[기훗기훗] 이재명 정부의 기후 대응 전략

10월 1주차 기훗기훗 주제는 국내 기후 정책 동향입니다.

지금 온 나라 시선이 '검찰 개혁'과 '내란 특검' 같은 정치적 이슈에 쏠려 있습니다. 이 거대한 이슈 블랙홀에 ​대거 바뀌는 기후 정책들이 묻히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국내 헌법재판소의 판결, 국제사법재판소(ICJ)와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권고라는 세 가지 외부 압박 속에서 한국 정부는 전례 없는 정책 대전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호우 피해 현장을 살피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

이제 기후 대응은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닌, 헌법적 의무이자 국제법적 책임이 됐습니다. 특히 2025년 7월 ICJ의 권고 의견은 기후 정책 지연이 국가 간 배상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압박 속에서 우리 정부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요? 살아지구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조직개편 :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정부 방향을 알려면 조직과 인사만 살피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정부 조직 개편입니다. 오늘이죠. 10월 1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공식 출범했습니다.

이곳 수장이 2015년 대한민국 녹색기후상을 수상한 김성환 장관입니다. 노원구청장 시절부터 미니 태양광 보급과 제로에너지 주택을 주도했고, 국회 입성해서는 재생에너지 관련 입법을 이끈 인물이죠. 가끔 국회 토론회를 가면 끝까지 남아 공부하는 몇 안되는 의원이기도 했습니다.

2025년 9월 19일 진행된 2035 NDC 대국민 공개 논의 총괄 토론회서 좌장을 맡은 김성환 장관 / 기후환경에너지부 유튜브

왜 조직개편에 나선 걸까요? 기존에는 환경부가 기후 정책을 총괄했지만, 정작 온실가스 배출량의 94%를 차지하는 에너지 부문은 산업통상자원부(현 산업통상부) 소관이었습니다. 집을 짓는 건축가와 실제 건축 자재를 관리하는 사람이 다른 셈이었죠. 해서 감축보다 산업 경쟁력 논리가 우선시되었고, 그 결과 2030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 이행은 답보 상태에 빠졌습니다.

새로 출범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기후 정책과 에너지 정책을 함께 관장합니다. 기존 산업부 에너지 부문(자원 제외)을 흡수한 겁니다. 정책 설계부터 집행까지 한 곳에서 관리할 수 있게 된 거죠. 산업통상부 에너지 파트에는 자원 산업 정책과 원전 수출 기능만 남게 되었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조직도 / 2025.09.30 환경부 보도참고자료

물론 새로운 숙제도 있습니다. 에너지 정책은 기후뿐 아니라 산업 경쟁력, 전력 수급 안정성 등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특히 산업부에 핵심적인 원자력 수출 및 석유·가스·광물 등 자원 산업 정책이 잔류하면서, 이해관계가 여전히 병립하는 구조적 한계가 남아 있습니다. 정부가 이 복잡한 이해관계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조정할 수 있을지, 그리고 사업부에 남겨둔 원전/자원 기능을 어떻게 기후 정책과 연계 할지는 앞으로 살아지구가 지켜봐야 할 부분입니다.

실질적 정책 조정 권한이 부족한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를 격상하려는 논의도 진행 중입니다. 실질적인 총괄 조정 및 심의 기능에 한계가 있어 이를 행정위원회급 권한을 가진 기구로 격상하고, 산하에 기후과학위원회와 시민위원회를 신설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감축 목표를 민주적으로 설정하고 검증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관련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습니다.


2035 NDC 논쟁 : 탄소 중립 VS 산업 경쟁력

두 번째 큰 흐름은 2035 NDC 목표 설정입니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정한 제출 기한은 2월이었지만 오는 11 월 브라질에서 열리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전까지 제출한다는 방침입니다. 이에 따라 지금 정부 안팎에서 뜨겁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2035 NDC 4개 경로/ 2035 NDC(안) 국회 공청회

정부는 최근 2019년 대비 40% 중후반, 53%, 61%, 67% 4개 감축 경로안을 제시한 상태입니다. 지금은 수송, 산업, 건축 등 각 부문별 의견을 수렴하는 단계고요.

어느 수준이 적정할까요? 여기서 과학적 기준이 중요합니다. IPCC는 파리협정의 1.5°C 목표 달성을 위해 2035년까지 2019년 대비 최소 60% 감축을 제안했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최소 61% 경로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 이행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2021년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하고 2030 NDC를 40%로 상향했지만, 이행 속도는 더디기만 합니다. 국회예산정책처(NABO)에 따르면, 2022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 대비 7.6% 감소에 그쳤습니다. 2030년 목표 달성이 불투명한 이유입니다. 이는 제조업과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한국 산업 구조의 특성에서 기인합니다.

한국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 구조 특성 / 국가예산정책처

그럼에도 탄소중립은 미래 세대의 생존권과 직결된 헌법적 이행 의무입니다. 따라서 과학적 요구와 현실적 이행 가능성 사이의 균형점을 같이 찾아야만 합니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탄소중립기본법의 중기 감축 경로(2031~2049) 설정이 미비하다며 헌법불합치를 결정한 만큼, 2035 NDC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됩니다. 국회는 2026년 2월까지 중기 감축 경로를 법제화해야 하는 법적 시한을 부여받았습니다.


제4차 국가배출권 할당 계획 : 총량 2030년까지 선형 감축

세 번째 큰 변화는 줄어드는 배출권 할당량입니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이 계획은 2030 NDC 달성과 2035년 감축 경로 진입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정책 수단입니다.

탄소중립 이행 방법은 명확합니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에너지와 산업 부문의 감축을 강행하면 됩니다.

수단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수요 관리 차원의 전기요금 현실화, 다른 하나는 시장에 신호를 주는 배출권거래제(ETS)입니다. 이 두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면 기업과 시민은 에너지를 덜 쓰고, 효율을 높이고, 저탄소 기술에 투자하게 됩니다.

그런데 난관이 있습니다. 탄소중립에 요구되는 에너지 비용 현실화는 역대 정치권이 회피해온 해묵은 과제입니다. 정치적 요인으로 인해 시장 기능을 상실한 전기요금은 핵심적인 가격 신호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29일 국회기후변화포럼이 주최한 '탄소중립과 산업경쟁력을 위한 전기요금의 방향과 과제' 세미나에서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원가와 상관없는 요금을 내고 있으며, 이는 정치적으로 결정된 요금"이라는 강한 비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논의 막바지인 4차 배출권 할당 계획이 더욱 중요합니다. 정치권 회피로 배출권거래제가 거의 유일한 시장 기반 정책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탄소세 도입은 논의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 국내 현실이니까요. 환경부와 산업부 협의는 마쳤고요. 이제 할당위원회 심의가 남았습니다.

배출권 수요・공급량 비교(’15~’23) / 2024.12.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

핵심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째, 배출권 총량을 대폭 줄입니다. 제4차 계획기간(2026-2030년)의 배출권 총수량은 약 25억 5,700만 톤(단위 환산)입니다. 제3차 계획기간(약 30억 8,200만 톤)에 비해 무려 5억 2,500만 톤이나 감축된 수준이죠.

왜 이렇게 줄였을까요? 3차 기간에는 배출권이 너무 많이 풀려서 최대 1억 4,000만 톤의 잉여가 발생했습니다. 가격도 톤당 8천 원대까지 떨어졌고요. 배출권 가격이 낮으면 기업들이 굳이 돈 들여 배출량을 줄일 이유가 없어지죠. 그래서 정부는 총량을 확 줄여서 시장에 명확한 신호를 주겠다는 겁니다.

둘째, '선형 감축 경로'를 도입합니다. 이게 4차 계획의 가장 핵심적인 변화입니다. 2024년 배출량을 기준으로 2030년 NDC 목표까지 매년 일정한 비율로 배출 허용량을 줄여나가는 방식입니다.

배출허용총량 및 이행연도별 사전할당량 (안) / 환경부

위 표를 보시면 총량은 발전과 발전 외 부문을 구분해 부문별로 산정했으며 사전할당량은 기타용도 예비분, 시장안정화 용도 예비분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합니다.

셋째, 유상 할당을 늘립니다. 지금까지는 배출권을 기업에게 거의 무상으로 나눠줬습니다. 하지만 이제 돈을 내고 사야 하는 유상 할당 비율을 늘립니다. 특히 실질 유상할당 비율이 4% 수준이던 발전부문은 2030년까지 50%로 올립니다. 산업 부문도 15%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고요. 기업의 자발적인 감축 활동과 저탄소 전환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여전히 무상 할당 비율이 높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넷째, 법적 구속력을 강화합니다. 9월 29일 국회를 통과한 배출권거래제법 개정안은 이 모든 변화의 법적 토대입니다. 주요 내용을 보면, 무상 할당 비율을 법으로 정하고, 기업이 의무 미이행 시 물리는 과징금 상한(톤당 10만 원)도 아예 삭제했습니다. 시세 조작에 대한 처벌도 강화했고요.

이제 배출권거래제를 대충 따르면 큰일 난다는 강력한 신호가 되길 바랍니다.


산업계 반응은?

당연히 긴장하고 있습니다. 발전 공기업은 2030년까지 3,800만 톤의 배출권이 부족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이는 결국 전기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죠.

이미지=픽사베이

철강, 시멘트 같은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과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들은 더 난감합니다. 갑자기 강화된 규제에 대응하려면 큰 투자가 필요한데, 여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엄격한 총량 관리와어 더불어 실질적인 기업 지원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시민사회는 반대로 더 강력한 조치를 요구합니다. 탄소중립을 하려면 강력한 총량 설정이 필요하고, 무상 할당 특혜는 더 빨리 줄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돈은 어떻게 지원할까: 녹색금융의 역할

기업들의 부담을 줄이고 실제 감축 투자를 유도하려면 금융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녹색분류체계(K-Taxonomy)입니다.

K-Taxonomy는 어떤 경제 활동이 '녹색'인지 정의하는 기준입니다. 이 기준에 부합하는 프로젝트는 녹색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죠. 예를 들어 재생에너지 전환, 에너지 효율 개선, 전기차 생산 같은 활동에 자금이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국회는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를 의무화하는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의 보고서도 내놨습니다.

핵심은 ETS로 인한 비용 부담이 단순히 기업의 손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녹색금융을 통해 투자 기회로 전환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ETS 유상 할당 수익금도 중소기업 지원, R&D 투자 등에 활용하자는 논의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 진짜 도전은 지금부터

정책의 최종 목적지는 사실상 에너지 전환입니다. 특히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얼마나 빠르게 늘리느냐가 관건입니다. 2035 NDC를 국제사회가 권고한 60%대로 맞추려면 재생에너지 확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전 세계 주요 기업들이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고 선언하고 있고, 이제 공급망 전체에 RE100 이행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에 남으려면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업 전용 PPA(전력 구매 계약) 시스템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도 모색중입니다.

또 하나의 뜨거운 감자는 전기요금 현실화입니다. 현 전기요금은 원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금을 올려야 에너지 효율 투자 유인이 생기고 수요 관리도 가능한데,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죠. 하지만 전문가들은 ETS와 전기요금 현실화가 함께 작동해야 실질적인 에너지 전환이 가능하다고 지적합니다.

지금 한국은 조직을 통합하고, 목표를 재설정하고, 시장 메커니즘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전은 지금부터입니다.

새로 탄생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원전/자원 기능이 잔류하는 산업부와의 구조적 갈등을 딛고 실제로 통합된 정책을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을까요?

2035 NDC는 과학적 요구 수준을 충족하면서도 실행력을 담보할 수 있을까요?

강화된 배출권거래제가 기업들에게 부담만 주는 게 아니라 실제 녹색 전환의 동력이 될 수 있을까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향후 10년 한국의 기후 대응, 나아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것입니다.

시민들에게 전기요금 인상은 부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줄어든 배출권 할당량 앞에서 산업계 역시 비슷한 심정이겠죠.

그러나 ICJ가 경고한 국가 간 배상 책임의 리스크와 미래 세대의 생존권을 위해 기꺼이 감내해야 할 동시대 과제가 아닐까요.

박소희 기자 ya9ball@disappearth.org 메일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