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판 나라 3편] 치과의사의 에너지 기업

저탄소 에너지의 희망 해상풍력발전,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비싼’ 전기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해상풍력을 빠르게 늘려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지금 상황을 해상풍력의 비용을 점차 낮춰가는 과정으로 본다. 소위 ‘미래를 위한 투자’다. 정부는 ‘미래를 위한 투자’에 참여하는 기업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해상풍력 사업 중 유망한 것을 뽑아 원전 발전단가의 6배에 달하는 값을 20년 동안 보장한다. ‘고정가격계약’ 제도다.

전기에 대한 대가는 사회 전체가 지불한다. 때문에 이 대가를 누가 가져가서 어디에 쓸지에 따라 해상풍력이 밝은 미래를 맞이할지, 단지 사회가 감당해야 할 폐기비용이 될 것인지가 결정된다. <살아지구>는 현재 민간사업자가 추진한 해상풍력 중 가장 먼저 상업운전에 돌입한 낙월해상풍력을 둘러싼 의혹들과 구조에 대해 탐사 취재했다.

취재 결과, 사회가 20년 간 부담할 전기요금이 흘러들어갈 구조의 끝에는 한국 서류로는 추적할 수 없는 태국의 법인 네트워크가 있었다. 그리고 그 구조에는 한국 에너지 인허가의 핵심을 쥐었던 전직 관료들의 이름이 등장했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돈이 이토록 불투명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면, 미래 세대를 핑계로 미래를 판 것은 아닐까. <살아지구>가 이 구조를 취재한 이유다.

편집자 주


2.4조 원 규모의 낙월해상풍력 시공권(EPC)을 따낸 컨소시엄에 공개적으로 참여한 건 두 기업이다. 중국 국영기업 CEEC와 한국에 등록된 태국계 시공사 호반블루에너지(이하 HBE)다. 4월 4일 낙월해상풍력의 51% 주주 명운산업개발은 CEEC의 사업 참여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사업자 측은 HBE와 CEEC가 '공동으로' EPC에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CEEC는 세계 각지에서 발전소와 송전망을 건설해온 중국 에너지건설 기업이다. 반대편에 놓인 HBE는 어떤 회사일까. 사업자가 밝힌대로 책임준공을 맡은 게 HBE 측이라면, 시공 상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들의 모회사가 책임을 진다. <살아지구> 취재에 따르면 시공에서 CEEC의 역할은 프로젝트 관리 등 일부 업무고, HBE는 운송 및 설치 등 핵심을 담당하는 계약이다.

호반블루에너지의 지배구조. 한국 공시에는 ISP라는 기업의 이름까지만 나온다 자료 살아지구 제작

수익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해상풍력은 핵심 인프라 사업인 만큼, 시공사의 재무 건전성과 사업 수행 능력 검증은 필수적이다. 안전 문제, 사업 중단 리스크도 발생할 수 있다.

<살아지구> 취재진은 대규모 공공사업에 참여한 업체를 검증하기 위해 HBE의 최상위 지배기업인 인피니티 솔라 파워(이하 ISP)를 찾아 태국 방콕으로 향했다. 태국 기업 공시 자료를 교차 검증한 결과, HBE의 모회사는 자본잠식 상태의 법인들이 대여금을 토대로 장부상 자산을 키운 방콕의 법인 네트워크 한가운데 있었다.

아무도 내려오지 않았다

태국 방콕에서 ISP의 법인 등록 주소를 찾아가니 넓지 않은 면적의 9층 건물이 나타났다. 1층은 태국 음식을 파는 식당, 3,4 층은 치과였다. 5층 이상은 올라갈 수 없었다.

취재진은 1층 수위에게 ISP가 이 건물에 있느냐고 물었다. 수위는 잠시만 기다리라며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지나가던 한 여성이 누구를 찾아왔냐고 물었다. 취재진은  ISP의 누구라도 괜찮다고 말했다.

외부에서 본 ISP 본사 건물 간판 사진 살아지구

여성은 통화를 하더니 곧 사람이 내려올 것이라고 했다. 5분이 지났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수위의 전화기가 울렸고, 잠시 통화 후 옆의 여성에게 넘겼다. 여성은 짧은 통화 뒤 전화기를 취재진에게 건넸다.

"그녀가 대답을 해 줄 겁니다."

수화기 너머 여성이 물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취재진이 답했다. "ISP 사무실을 찾아왔습니다."

대표를 자처한 그가 말했다. "지금 그 사무실에는 사람이 없고, 한국 사업 담당하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해요." 

결국 ISP의 관계자는 현장에서 만날 수 없었다. 대표를 자처한 해당 여성은 ISP의 대표가 아니었다. 법인 주소지를 찾아가 대표를 자처하는 관계자와 통화했으나, 한국 담당자의 신원이나 구체적인 사업 내용에 대한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건물에 있던 층수 안내. 2층 연회장, 2층 치과 사무실, 4층 치과 클리닉, 5층 대회의실이라고 쓰여 있다 사진 살아지구

ISP

등기상 ISP의 대표는 타위삭 운쁘라세트(Taweesak Unphrasert)라는 치과의사다. 아시아경제 보도에 따르면 명운산업개발은 2026년 4월 4일 연 기자간담회에서 이 사실을 밝히며 “국내에서 책임준공을 하겠다는 기업이 없어 태국 사업가가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임준공이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특정 사업의 건설을 책임지고 완성한다는 약속이다.

ISP는 어떤 기업일까. ISP의 2024년 말 기준 총자산은 1044억 원에 달한다. ISP의 많은 총자산은 2023년에 크게 늘었다. 2022년 554억 원 대비 86% 늘어난 수치다.

그러나 ISP의 태국 공시 자료가 보여주는 숫자는 겉 보기와는 달랐다. 2024년 ISP의 누적 결손금(적자가 발생하며 쌓인 손실)은 자본금 약 22.5억 원(6000만 바트)을 초과했고,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약 18억 원(4790만 바트)을 기록했다. 자본잠식 상태다. 

1000억 원이 넘는 총자산의 절반(약 520억 원, 49.86%)을 차지한 것은 관계사에 대한 대여금이다. 대여금은 돌려받을 돈이니 건전한 자산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 ISP가 지주회사 목적으로 산하에 여러 법인을 거느렸다면, 자체 매출이 적거나 유형자산이 거의 없을 수도 있다. 

문제는 ISP의 자금이 향한 곳이다. ISP가 대여금을 돌려받으려면 빌린 쪽에 갚을 능력이 있어야 한다. ISP가 받아야 할 이자는 현금으로 회수하지 않고 ‘받을 돈’으로 장부에 쌓여 있었다. 총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한 관계사 대여금을 빌려간 법인들은 본업을 통한 매출이 없거나 ISP의 자금 원천인 레나와 연관이 의심됐다. 레나는 비그림-CEEC와 함께 한국 재생에너지 사업 삼자동맹의 일원이다. 

ISP를 둘러싼 지배구조는 매우 복잡했다. ISP가 위치한 건물에는 <살아지구>가 확인한 것만 8개 법인이 등록돼 있다. 동일 주소에 있는 법인들 중 7개는 지분을 통해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였다.

태국 공시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ISP와 관계 법인의 지배구조도 자료 살아지구 제작

타위삭은 이 네트워크에서 대부분의 법인에 이사로 이름을 올리거나 지분을 갖고 있었다. 네트워크 안에는 비그림의 한국 진출을 도운 레나가 지분을 가진 자회사도 있었다. 동일 주소의 네트워크에 속한 기업 중 발전 설비를 가지고 에너지 사업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법인은 1개(휴테크파워)다.

실제 현금은 어디로 갔나

ISP의 총자산이 2023년 1000억 원 이상으로 늘어난 이유는 한국 법인 레나에서 빌려온 3400만 달러(약 463억 원) 덕분이었다. 

한국에서 넘어온 463억 원은 ISP의 재무적 건전성을 위한 투자금이었을까. 한국에서 넘어온 실제 현금 대부분은 네트워크 하위 법인들에 대여금 형태로 다시 이동했다. 확인 가능한 최종 도착지는 세 곳이었다.

가장 큰 금액인 약 218억 원(5.8억 바트)은 제 3의 법인(NPK솔라)에 대여금으로 갔다. 태국 공시 자료에 따르면, 이 법인은 매출을 올리고 있는 영업 법인이다. 그런데 해당 법인의 최대주주이자 대표는 레나가 보유한 캄보디아 자회사의 이사와 동일 인물이었다. 

레나에서 네트워크로 유입된 자금이 한 법인에 도착했는데, 해당 업체는 당초 태국에 돈을 보낸 레나의 관계자였다는 뜻이다.

나머지 두 곳에는 약 118억 원과 약 19억 원이 각각 대여금으로 유입됐다. 118억 원을 빌린 법인은 ISP의 99.98% 자회사로, 변호사K 로펌에 위치해 있다. 영업수익이 없으면서도 연간 약 6.7억 원의 이자를 지급하며 자본잠식 상태였다. 

빚이 자본이 되다

네트워크 안에서는 실제 현금 유입 없이 장부상 자본을 늘리는 거래도 확인됐다. 이런 흐름은 ISP 자회사(ISP캐피탈)와 레나 자회사(비저너리) 사이에서 확인됐다.

태국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ISP 자회사는 한국의 레나 자회사로부터 약 6.3억 원(1650만 바트)를 빌린 상태였다. 그런데 빚을 진 쪽인 ISP 자회사가 오히려 약 7억 원(1829만 바트)을 투자해 돈을 빌려준 레나 자회사의 지분 61%를 취득하고 최대주주로 등재됐다. 어떤 회사에게 돈을 빌린 뒤, 돈을 빌려준 회사의 지분을 샀다는 의미다.

ISP 자회사의 매입 대금은 레나 자회사의 자본금으로 동원돼, 자본금을 15배로 늘렸다. 외부에서 신규 자본 유입 없이, 두 기업 사이 빚과 지분만으로 장부상 자본금이 커진 형태다. ISP 자회사와 레나 자회사 모두 본업을 통한 영업 매출이 거의 0인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다.

<살아지구>는 ISP에 사업 운영 실태, 대표의 실질적 경영과 의사결정 역할, HBE에 대한 ISP의 역할 범위, ISP 연관 법인들과 관계 등을 묻는 질의서를 지난 4월 6일 보냈으나 발행일까지 회신이 오지 않았다.

계열사 껴넣은 기자재 거래

HBE가 낙월해상풍력 시공 중 자신과 계열사인 법인(EMS)을 껴넣으며 해당 자회사만 막대한 차익이 발생한 정황도 확인됐다. HBE는 2025년 3월을 목표로 해저케이블은 형통광전, 트랜지션피스(TP, 풍력 타워와 하부를 연결하는 부품)는 히바람으로부터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HBE는 형통광전이나 히바람과 직접 계약하지 않았다. HBE는 함께 태국 네트워크에 속한 법인과 계약을 체결하고, 해당 계열사가 각 납품 회사와 계약을 맺었다. 이 과정에서 해당 계열사는 납품 업체들에서 받은 가격보다 당시 환율로 약 950억 원 비싸게 HBE와 거래했다. 

차익을 취한 계열사의 유형자산은 계약이 이뤄진 2024년 기준 약 18만 원(4662바트)으로 공장, 기계 설비 등이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배구조를 관통하는 핵심 인물

복잡한 이 구조를 관통하는 이름이 있다. 태국 유명 로펌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변호사K다. 해당 로펌은 앞서 계열사를 껴넣은 기자재 거래에 자문을 제공하기도 했다.

해당 로펌은 자사 홈페이지에 비그림의 한국 에너지 사업 인수를 주요 실적으로 게시하고 있다. 그런데 변호사K는 외부 법률 자문에 그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법인 네트워크 안의 업체 5곳에 등기이사로 직접 이름을 올렸다.

가장 직접적인 연결은 소재지에서 확인된다. ISP의 지분을 소유한 상위 법인(웨더리아A)의 본점 등록 주소는 이 로펌의 공식 본사 주소와 층수까지 일치한다. 해당 법인의 자산은 다른 회에서 빌린 돈만 있는 상태였다.

변호사K와 그의 로펌에 있는 주소 법인은 ISP의 주주였다 자료 살아지구 제작

변호사K의 역할은 태국에 머물지 않았다. 한국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그는 2021년 4월부터 7월까지 ISP의 한국 자회사(블루엔지니어링)의 공동대표이사로 취임했다가 3개월 만에 사임했다. 같은 해 레나의 감사보고서에도 공동대표로 이름이 올라 있다. 태국 서류상 법인들의 이사 뿐만 아니라, 한국 EPC 지배구조의 핵심 법인 두 곳에 직접 대표로 앉았던 인물이다.

비그림은 낙월해상풍력 사업에서 설계나 시공이 아닌 투자자로 참여 중이다. <살아지구>는 변호사K에 해당 법인들에 경영진으로 참여한 경위, 비그림이 낙월해상풍력을 인수할 때 해당 로펌의 역할 범위 등을 묻는 질의서를 지난 4월 6일 발송했으나 발행일까지 답변이 오지 않았다.

같은 건물, 그리고 남은 질문

낙월해상풍력의 EPC를 맡은 컨소시엄 대표사 HBE. 이 회사의 모회사는 방콕 한 건물과 비그림 로펌 사무실에 형성된 네트워크의 일부였다. 

회계사 자문에 따르면 공시 자료로는 한계가 있지만, 해당 자료를 통해 ‘페이퍼컴퍼니 네트워크’로 의심 가능한 수준이었다. 해당 네트워크의 전체적 연결은 아래와 같다.

CEEC를 제외한 낙월해상풍력 사업 주체들의 구조도 자료 살아지구 제작

그런데 이 네트워크에는 레나와 비그림만 있지 않았다. CEEC와 명운산업개발까지 한자리에 모인 곳이 따로 있었다. CPT라는 이름의 태국 상장사였다.

바람을 판 나라 시리즈는 뉴스타파함께재단 KINN 탐사보도 취재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임병선 기자 bs@disappearth.org 메일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