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배출 물질 추적➂ 총염소 조사는 왜 빠졌나
이번 취재는 무심코 나온 어민의 한마디에서 시작했다. “갯바위에 굴이 사라졌다.” 핵발전소든 화력발전소든 가동하려면 냉각을 위해 뜨겁게 데운 바닷물 즉, 온배수를 내보낸다. 온배수 방류로 부산 기장, 전남 영광, 충남 서산, 인천 등에서 해양 생태계 변화와 파괴, 어민들의 피해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온배수가 일으킨 각종 문제는 ‘열’에만 한정해 조사했다. 그런데 ‘열’이 전부가 아니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온배수에는 지금껏 알려지지 않던 ‘화학물질’이 대량 들어 있었다. ‘살아지구’는 화력발전소가 내보내는 온배수 속 ‘화학물질’의 정체를 폭로하고, 이 물질의 존재가 어떻게 감춰져 있었는지 추적한다. 이번 기획은 값싼 전기 사용의 편익 뒤에 숨겨진 사회적 비용을 어떻게 어민에게 전가하는지에 대한 고발장이기도 하다. - 편집자 주
화학물질 추적 ⓛ 생명이 사라진 갯바위
화학물질 추적 ② 굴을 녹이는 건 '온도'가 아니었다
가정용 락스 연간 1,350만 통 분량 소독제 옹진군 바다에 쏟아내
영흥화력발전소는 매년 27억 톤의 온배수를 바다에 쏟아낸다. 이 물에는 가정용 락스 1,350만 병 분량의 살균소독제, '차아염소산나트륨'이 들어 있다. 차아염소산나트륨은 바닷물 속에서 ‘총염소’ 성분으로 변해 바다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 생명을 파괴할 수 있는 유해 물질인 것이다.
한국남동발전은 “염소는 햇빛에 의해 빠르게 분해돼 해양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살아지구>의 조사 결과, 굴이 사라진 승봉도 일대 해안에서 총염소가 검출됐다. 승봉도 북쪽 해변에서는 64ppb나 측정됐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정한 ‘해양생물을 급성으로 폐사시킬 영향이 없는 안전한 수준’인 13ppb의 4.9배를 초과한 양이다. 굴 폐사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농도 수치였다.
승봉도 바다에서 나온 많은 총염소의 출처가 영흥화력발전소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승봉도 근처에서 가장 큰 총염소 배출원은 영흥화력발전소임은 틀림없다. 옹진군 일대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총염소 영향 조사가 요구된다.
그러나 온배수 피해 조사는 ‘열’ 조사에 머물렀고, 온배수 속 살균 소독제의 산물인 ‘총염소’ 조사는 빠졌다. 왜 이렇게 됐을까?
너무 늦게 알게 된 살균소독제, '차아염소산나트륨'의 존재
영흥화력발전소는 2006년 가동했다. 인근 섬 주민들이 피해 조사를 요구한 건 2018년부터다. 어민들은 영흥화력발전소 3,4호기가 들어선 2000년대 중반부터 굴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다시마 등의 생산도 줄었다고 주장했다.
(어업피해보상 요구를 시작한 건)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돼 갖고 사진도 찍어서 보내고 했죠. 여기에서 계속 굴이 죽어 나가는 거야. 한국남동발전 보이는 쪽부터 굴이 죽어 나가는 거야. 그때 자월면에다 연락을 했었죠. 남동발전 온배수 문제로다가 이게 굴이 점점 죽어나가고 그런다. 그게 (이유) 같다. 그래서 우리가 협의체를 만들었어요 강차병 (이작어촌계장/어민대표)

3년간 줄다리기 끝에 2021년 어민대책위원회와 한국남동발전은 온배수 배출에 따른 어업 피해를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발전소가 어민들에게 보상하기로 합의했다. 어민들과 한국남동발전은 수온(변화), 굴 등의 생산량 변화 등 조사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했다. 부경대 해양과학공동연구소가 조사를 맡았다.
화력발전소든, 핵발전소든 지금껏 피해 조사는 ‘온배수’에 집중됐다. 발전소가 전력 생산을 하는 과정에 바닷물을 끌어와 쓰고 다시 바다에 쏟아내는데, 이때 배출하는 물은 주변 바다보다 7도가량 뜨거워 생태계가 교란, 파괴된다. 피해 보상은 온배수의 ‘열’로 인한 수온 변화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온배수에는 ‘열’만 있는 게 아니다. 총염소 형태의 화학물질도 있다. 살아지구의 취재로 굴이 사라지는 주된 원인이 ‘열’이 아닌 ‘총염소’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문제는 이런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았다는 점이다.
어민들은 발전소가 화학물질을 사용할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러나 피해 조사를 합의할 때만 해도 그 물질이 정확히 무엇인지, 또 바다에 어떤 영향을 줄지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피해 없는 전기 분해를 한다”는 발전소의 답변… 알고 보니, 살균소독제 대량 사용
어민들은 2023년 열린 어업 피해조사 중간 보고회 전까지, 온배수가 그저 따뜻한 바닷물로만 여겼다고 한다. 온배수에는 차아염소산나트륨이라는 소독제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여기에는 발전소 측이 소독제 사용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것도 한몫 차지한다. 발전소는 총량 단위로 소독제의 사용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을 정도다.
강차병 어촌계장은 2023년 어업 피해조사 중간 보고회에서 한국남동발전의 어업 보상 담당자를 만났을 때, 평소 발전소 측에 어떤 화학물질을 쓰는지 물어봤다고 했다. 이때 발전소 측은 “피해가 없는 전기분해’를 이용해 따개비 등을 없앤다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답변을 했다고 기억했다.
“자기들은(영흥화력발전소는) 약품 같은 거 안 쓴대요. 그럼, 바닷물 빨아들이는 관로 같은 데 홍합이나 따개비 없애는 작업을 뭐로 하냐? 염산을 쓰는 거 아니냐? 했더니, 염산은 이제 못 쓴다고 하고, 그럼 어떻게 없애느냐 물었더니, 피해가 없는 전기 분해를 한다는 거예요. (바닷물을) 전기 분해를 해서 관로에다가 물을 집어 넣어서 전기분해한 물을 쓰면 안 붙는대. 그러면 그 양이 얼마냐 그랬더니, 어마어마해요. 근데 따개비, 굴 죽으라고 전기 분해를 한다는데, 전기 분해한 물이 전부 다 바닷물에 다 섞이는데 그게 피해가 없다? 그게 말이 돼? 안 되죠.” (강차병 이작어촌계장)
한국남동발전이 언급한 ‘피해가 없는 전기분해’는 정확히 말하면, 락스의 원료인 차아염소산나트륨을 만들어내는 장치다. 즉 ‘해수전해설비’를 이용해 취수구에 달라붙는 따개비, 홍합을 없애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이 과정에서 살균 소독제인 차아염소산나트륨이 배출돼 바닷물 속에 ‘총염소’ 형태로 잔존한다.
‘해수전해설비’는 발전소로서는 꼭 필요한 설비지만, 해양 생태계에는 악영향을 준다. 총염소가 플랑크톤, 홍합, 따개비, 굴 등 해양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국내외 연구 결과가 여럿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은 바닷물 속 총염소 허용 수준을 매우 낮게 정하고 있다. 강차병 씨가 들은 대로 “피해가 없는 전기 분해’는 결코 아닌 것이다.
영흥화력발전소의 연간 온배수 배출량은 2024년 기준 27억 톤이다. 냉각수에 차아염소산나트륨을 평균 0.4ppm(400ppb) 농도로 연속 사용하는 사실에 비췄을 때, 영흥화력발전소의 연간 차아염소산나트륨 사용량은 1,080톤으로 추산된다. 2L짜리 가정용 락스 1,350만 병에 해당한다.
궤변 ① ‘합의 당시, 어민들의 총염소 조사 요구가 없었기에 조사하지 않은 것’
뒤늦게 발전소가 대량의 살균 소독제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어민들은 발전소와 부경대 측을 향해 피해 조사 내용에 총염소 측정도 추가할 것을 요구했다. 수온 변화 조사 외에도 총염소 조사도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한국남동발전은 이미 조사 내용에 대한 합의가 끝난 사항이라며 어민들의 요구를 일축했다.
<살아지구>가 한국남동발전에 어민들의 총염소 조사 요구를 거절한 이유를 묻자, 한국남동발전은 “어민들과 조사 내용을 협의할 때, 잔류염소로 인한 (어민들의) 피해 주장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온배수 피해 조사를 합의할 당시, 바닷물 속에 ‘잔류 염소’가 얼마나 되는지, 또 해양 생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조사해 달라는 어민들의 요구가 없었던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땐 차아염소산나트륨이 대량 사용된다는 사실을 어민들이 잘 몰랐기 때문이다.

어민들이 발전소에서 차아염소산나트륨을 대량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피해 조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였다. 따라서 어떤 내용의 조사를 할지에 대해 발전소 측과 협의할 당시, 총염소 조사를 요구할 수 없었다.
더구나 한국남동발전은 그전까지 살균 소독제 사용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어민들은 소독제의 존재를 몰랐고, 당연하게도 ‘염소 조사 없는 피해 조사’에 합의했던 것이다. 소독제 사용을 미리 알았다면, 조사 내용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게 어민들의 주장이다.
총염소가 플랑크톤을 비롯한 유생 단계의 굴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고 있음이 알려진 이상, 지금이라도 총연소 조사에 응하는 것이 책임 있는 발전소의 자세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한국남동발전은 당시 합의한 조사 내용에는 총염소 조사가 없기에 조사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강차병 이작어촌계장은 영흥화력발전소 어업피해조사를 맡은 부경대학교 해양과학공동연구소 측에 왜 총염소를 측정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영흥화력발전 어업피해조사를 총괄했던 이인철 부경대 교수는 <살아지구>와의 통화에서 “(피해조사) 과업지시서에 (총염소 조사가) 없어서 안 한 것 뿐”이라고 답했다.
궤변 ② 총염소로 인한 피해 조사 사례가 없다(?)
어민들은 피해 조사가 마무리된 2023년 12월, 다시 한 번 ‘총염소 조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남동발전은 총염소를 조사한 사례가 없다며 어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발전소 측은 “타 사업장 역시, 온배수 영향 조사에서 잔류염소를 조사하지 않는다”며 “온배수 피해 보상에서 잔류염소 성분이 영향을 끼친 사례가 없다”고 주장했다.(경인일보 2024.11.20.)
그러나 LNG가스기지 시설에서 과거 염소 피해 조사를 한 사례가 있다. 경남 통영시에 있는 LNG가스기지가 차아염소산나트륨이 든 바닷물을 배출했다. 이에 따라 3년간 총염소 측정을 포함한 어업피해조사(2015~17년)를 진행했다.
가스기지도 화력발전소와 마찬가지로, 바다에 총염소를 배출한다. LNG가스기지도 ‘차아염소산나트륨을 생성하는 해수전해설비’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온도가 높은 ‘온배수’를 쏟아내는 화력발전소와 달리, 온도가 낮는 ‘냉배수’를 배출한다.
당시 총염소 측정이 포함된 피해 조사는 한국해양대학이 맡았는데, 인근 바다 7km까지 염소 영향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 한국해양대는 가스기지의 배수가 주변 바다에 미친 총염소 농도를 일정 거리에 따라 10ppb, 20ppb, 30ppb로 분류했다. 가스기지에서 나온 냉배수 속 총염소는 바닷물과 섞이며 농도가 점차 낮아지지만, 먼 곳까지 도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 조사에서는 한국해양대학은 미국 EPA가 만성 생물에 독성 영향을 준다고 판단하는 15ppb보다 5배가량 높은 총염소 80ppb를 적용했는데도, 그 피해 범위가 넓게 나타났다.
그러나 가스 기지를 운영하는 한국가스공사가 한국해양대의 조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법적 다툼으로 이어졌고. 총염소로 인한 피해 보상 단계로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당시 재판부는 한국해양대 조사에서 일부 하자가 있어, 결과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한국가스공사의 염소 배출 책임 농도를 10~30ppb로 설정한 한국해양대 연구진의 판단에 대해선 인정했다.
화력발전소가 배출한 총염소 피해 조사는 아니었지만, 같은 ‘해수전해설비’를 도입해 차아염소산나트륨을 생산하는 LNG가스기지 주변의 총염소 피해 조사를 있었던 것이다.
통영시 LNG 가스기지 어업피해조사 시, 염소가 포함된 조사 사례가 있었던 것에 대한 입장을 묻는 <살아지구>의 질문에 한국남동발전은 즉답을 회피한 채, “조사 항목은 국내 발전소 온배수 피해조사 시, 일반적으로 조사하는 항목 및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어민 측과 협의를 통해 정했다”고 답했다.
류종성 서경대학교 미래융합학부 교수(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위원장)는 “발전소 입장에서는 염소로 (피해를) 보상하는 선례가 남게 될 경우, 이후 보상에서도 비슷한 문제 제기를 우려해 염소 조사를 하지 않는 방식을 택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총염소 조사’ 없이, 어민들에게 피해 보상금 지급… 일부 어민들 총염소 조사 요구
올해 2월, 한국남동발전은 대책위 대표를 맡은 강차병 이작어촌계장을 불러 합의서를 내밀며 사인을 요구했다. 온배수 피해와 관련, 대이작도 어민들에게 1억 5,000만 원을 보상할 테니, 앞으로는 온배수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대이작도에서 보상 대상 어민은 모두 96명. 한 사람에 160만 원가량의 보상금이었다.
강차병 어촌계장은 합의 요구를 거절했다. 총염소 조사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보상은 정확히 산정된 피해 규모에 근거한 보상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온배수가 계속 쏟아져 나와 바다에 영향을 줄 텐데, 앞으로는 문제제기를 하지 말라는 요구가 부당하다고 느꼈다.
“자기네 민원 안 들어오게 어촌계에서 계원들한테 지불을 해줘라. 민원 안 들어오게 알아서 나눠서 줘라. 이게 8년 4개월의 피해 보상이라고 하면 말이 안 되잖아요. 옛날에 엄마, 아버지들이 굴 따 갖고 애들 다 중학교, 고등학교 보내고 자취시키면서 등록금 내가며 대학교까지 가르쳤던 그런 어장이었어요. 근데 지금 (굴이) 완전히 없어. 옛날에 (겨울철 하루 한 명당) 8kg에서 10kg 이상은 다 땄어요.” (강차병 이작어촌계장)

한국남동발전은 각 어촌계 단위별로 보상금 지급을 합의하고 있고, 법원에 보상금을 공탁했다고 밝혔다. 많은 금액이 배정된 영흥도를 비롯한 자월도 어민들은 보상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대이작도, 소이작도, 승봉도, 선재도 등의 어민들은 보상금 수령을 거부하고, 총염소를 포함한 어업 피해 재조사를 요구 중이다.
기후·생태 전문매체 ‘살아지구’는 영흥화력발전소 일대의 총염소 검출 사례를 넘어, 전국 곳곳의 발전소가 쏟아내는 총염소 배출 실태 추적을 이어갈 계획이다. 또 총염소 말고 화력력발전소에서 또다른 유해 화학물질이 바다로 흘러가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는지 검증 보도할 예정이다.
취재 : 박소희, 임병선
도움주신 분 : 강차병 이작어촌계장, 강만수 승봉리이장, 류종성 서경대학교 미래융합학부 교수
임병선 기자 bs@disappearth.org 메일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