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지구'가 묻지 못한 두 가지 질문

데이터 없는 과학, 생존 위협받는 저널리즘… 독립언론이 마주한 거대한 장벽

살아지구가 한 달 넘게 추적한 발전소 온배수 오염 문제에 대한 질문에, 이재명 대통령은 짧게 답했다. 

"검토하겠습니다."

2025년 9월 11일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비영리 독립언론 '살아지구'가 얻은 소중한 질문 기회는 그렇게 끝났다. 허탈함보다 더 근본적인 물음이 앞섰다. 어쩌면 우리가 정말 물었어야 할 질문은 따로 있었던 게 아닐까.

그날 살아지구가 묻지 못한, 그러나 반드시 물어야 할 두 가지 질문을 기록한다. 하나는 과학적 진실을 뒷받침할 ‘공공 데이터의 위기’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진실을 제대로 전해야 할 ‘저널리즘의 위기’에 관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온배수 속 배출물질 규제 공백과 관련해 점검을 약속했다.

첫 번째 질문: 국가는 재난의 과학적 근거를 생산할 의지가 있습니까?

살아지구가 대통령에게 발전소 온배수 문제를 물은 것은, 그것이 인천 옹진군 앞바다에서 굴이 껍데기째 사라져가는 현실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어민들은 피해를 호소하지만, 보상을 한 번 받으면 다시는 피해를 주장할 수 없는 구조다. 문제는 이 피해를 입증할 '과학적 인과관계'의 고리가 끊어져 있다는 점이다.

[발전소 배출물질 추적] 프로젝트를 취재하며 살아지구가 마주한 가장 큰 장벽은 바로 '데이터의 부재'였다. 온배수 속 어떤 화학물질이 해양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국내에서 단 한 번도 체계적으로 조사된 바 없었다.

발전소 건설 전후의 수질 데이터를 비교해야 정확한 오염원을 지목할 수 있지만, 정작 발전소 건설 전 기초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비교할 과거’가 없으니, ‘현재의 피해’를 입증할 길도 막막했다.  끝없이 쏟아지는 온배수에는 지금껏 알려지지 않던 ‘화학물질’이 대량 들어 있었지만 국내 연구 자료는 단 한 건도 찾을 수 없었다.

[발전소 배출 물질 추적] 프로젝트
➀ 생명이 사라진 갯바위
② 굴을 녹이는 건 '온도'가 아니었다
➂ 총염소 조사는 왜 빠졌나

이것은 비단 온배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핵폐기물 처리 비용, 재생에너지 폐기물 처리 등 눈앞의 환경 재난에 대한 사회적 손실 비용은 제대로 추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 지난 16일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토론회에서도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과학적 분석 시스템의 부재가 기후대응 정책 실패의 핵심 원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일본은 해양생물환경연구소를 통해 발전소와 주민 간의 분쟁을 과학적 데이터로 해결한다.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우리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정책을 환경부로 이관해 ‘기후환경에너지부’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진심이라면, 가장 먼저 공신력 있는 데이터 생산 시스템부터 구축해야 한다.

살아지구는 이것을 물어야 했다. 대통령은 눈앞의 재난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해결할 의지가 있는가?

두 번째 질문: 진실을 향한 저널리즘은 어떻게 생존해야 합니까?

'온배수 질문'이 대통령에게 가닿기까지, 우리는 또 다른 장벽을 넘어야 했다. 창간 1년, 기자 2명의 신생 독립언론이 대통령 기자회견에 초대된 것은 언론 역사상 의미 있는 순간일 것이다. 그러나 이 ‘이벤트’가 한국 언론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현재 한국의 언론 생태계는 거대 포털의 알고리즘에 종속되어 있다. ‘클릭 경쟁 → 선정성·속보 경쟁 → 심층 분석 부재 → 신뢰도 하락’의 악순환 속에서, 한 달 넘게 발로 뛴 탐사보도는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따라 생산되는 ‘어뷰징 기사’의 파급력도 따라잡기 어렵다. 콘텐츠의 질이 아닌 트래픽이 언론사의 생존을 결정하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4 미디어 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7.7%가 포털을 통해 뉴스를 접하고 있다. 이는 전통 언론의 의제 설정 독점 구조를 해체하고 시민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였지만 뉴스의 유통을 포털이 독과점하는 구조를 낳았다. ‘살아지구’와 같은 독립언론은 최소의 생존 기반인 독자의 신뢰와 후원을 얻기 위해 주류 언론이 만들어 놓은 카르텔과 포털이란 두 장벽을 넘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공영방송 독립성 강화를 언론개혁 과제로 꼽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광고주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는 비영리 독립언론들은, 정작 독자의 무관심과 재정적 압박이라는 또 다른 종속 관계에 직면한다.

정부가 보유한 데이터 개방, 탐사보도 프로젝트 단위의 지원, 포털 노출의 공정성 확보 등 최소한의 ‘공정한 운동장’을 만들기 위한 제도적 고민 없이는 ‘좋은 저널리즘’은 구호에 그칠 뿐이다.

11일 대통령 취임 기자회견에서 질의를 하고 있는 살아지구 임병선 기자.

그럼에도 살아남아, 계속 질문하겠습니다

‘살아지구’에는 막역한 검사 친구도, 고급 정보를 물어다 줄 고위층 가족도, 든든한 자금줄도 없다. 대신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다양한 관점을 교차 검증하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질문할 시간은 많다.

대통령의 짧은 답변 앞에서 살아지구가 복기(復棋)한 것은 ‘무엇을 질문했어야 했나’다. 좋은 질문이 무엇인지 아직 정답은 모르겠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살아지구’가 질문을 많이 하면, 우리 사회의 억울한 사람들이 조금은 줄어들 것이라는 믿음. '살아지구'가 묻지 못한 두 가지 질문을 다시 꺼내 든 이유다.

박소희 기자 ya9ball@disappearth.org 메일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