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초등학교 1/3은 '미세먼지 정보 사각지대'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받아보는 미세먼지 수치는 우리 자신이 서 있는 곳의 수치를 보여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기후와 생태를 전문으로 하는 비영리 탐사 독립언론 <살아지구>는 창간 특집이자, 첫 번째 탐사 기획으로 “숨의 격차, 미세먼지 속 아이들”을 시작합니다. <살아지구>는 ‘독립언론 100개 만들기’를 기치로 뉴스타파와 뉴스타파함께재단이 공동 운영 중인 ‘뉴스타파저널리즘스쿨’이 배출한 네 번째 독립언론입니다.
뉴스타파와 협업한 이번 공동 프로젝트는 ‘정부가 내놓는 미세먼지 정보가 과연 믿을 만한가?’라는 의심에서 시작해 우리 아이들이 며칠이나 ‘건강하지 못한 숨’을 마셨는지, 전국 600여 개 대기질 측정소의 운영 실태는 어떤지, 일선 교육 현장에서는 미세먼지 대책을 제대로 세웠는지 등 우리 사회의 미세먼지 대응 실태를 추적하는 과정으로 취재를 확장했습니다.
미세먼지 측정 정보의 정확성은 제공받는 측정소와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점에 주목해, 미세먼지 정보를 제공받는 대기질 측정소가 학교에서 직선거리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전국 6천여 개 초등학교와 600여 개 측정소 간 거리 데이터를 최초로 분석해 정리했습니다. 각 초등학교와 대기질 측정소 간 거리 정보는 <미세먼지 사각 초등학교 검색기>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한별초등학교 0.7km V. 은현초등학교 6km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 사는 10살짜리 초등학생을 둔 A 씨는 미세먼지가 심한 봄철이나 겨울철이 되면, 매일 아침 휴대전화로 미세먼지 애플리케이션을 본다. 미세먼지 수치가 35μm/㎥를 넘어 공기질이 ‘나쁨’으로 표시되면, 아이에게 마스크를 씌워 학교에 보낸다.
아이가 다니는 한별초등학교 주변의 미세먼지 수치는 이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별내동 측정소’에서 잰 정보다. 별내동 측정소와 한별초등학교의 거리는 약 0.7km다.
반면, 같은 경기도 북부에 있는 양주시의 은현초등학교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이 학교에서 가장 가까이 운영 중인 미세먼지 측정소는 양주시 보산동에 있는데, 학교로부터 6km가량 떨어져 있다.
0.7km와 6.86km의 차이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내가 핸드폰으로 확인하는 미세먼지 수치가 내 위치의 대기질을 보여줄까?
우리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받아보는 미세먼지 수치는 우리 자신이 서 있는 곳의 수치를 보여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전국 661곳에 설치된 대기질 측정소 중에서 내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대기질 측정소에서 잰 정보 값을 받아 보는 구조다.
다시 말해, 대기질 측정소가 내 위치에서 얼마나 가까운 곳에 있느냐에 따라 미세먼지 정보의 정확한 값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세먼지 측정 정보의 정확성은 수치를 제공받는 측정소와의 거리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측정소와의 거리에 따라 초등학교별로 미세먼지 정보의 정확성에 대한 유횻값이 달라지는, 이른바 ‘정보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미세먼지 정보값의 유효 거리 기준은 반경 4km
그런데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대기질 측정소에서 잰 데이터가 정확하다고 판단하는 거리 기준은 4km라고 한다. 그러니까, 4km 이내에 측정소에서 보내주는 미세먼지 정보에 한해서 정확성을 담보할 수 있고, 4km를 벗어난 지역의 측정소가 보내는 미세먼지 정보는 해당 지역의 정확한 대기질 상태를 보여준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한국환경공단은 전국 661개 대기질 측정소에서 잰 공기질 수치를 관리하는 환경부 소속 공공기관이다.
결국, 대기질 측정소에서 4km 이내에 들어갈 경우, ‘미세먼지 정보 안전지대’, 그렇지 않고 4km 밖으로 벗어난 경우 ‘미세먼지 정보의 사각지대’로 구분할 수 있다. 문제는 해당 학교가 가까운 측정소로부터 4km 이상 떨어져 있는 ‘미세먼지 사각지대’에 있는 학부모와 아이들은 해당 관측소가 제공하는 정보 외에 미세먼지 수치를 달리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대기질측정소보다 산업단지가 더 가까운 당진시의 초등학교
충청남도는 산업단지가 많고 서해 넘어 중국이 있어 미세먼지가 심한 곳 중 하나다. 취재진은 당진시 석문동 통정리에 있는 석문초등학교를 찾았다.
이 학교 역시 ‘미세먼지 정보 사각지대’에 있다. 초등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대기질 측정소는 당진시 송산면 동곡리에 있는데, 학교로부터 직선거리로 11.36km 떨어져 있다. 대기질 측정소와 초등학교 간 ‘유효 기준 거리’인 4km를 한참 벗어난 거리다. .
더구나 석문초등학교 주변에는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시설이 많다. 학교 바로 앞 큰길 너머로 석문국가산업단지가 있다. 국가산단 내에는 철강 공장, 플라스틱 공장, 소독제 공장 등 50여 개의 제조업 공장이 가동 중이다. 직선거리로 따졌을 때, 석문초등학교와 석문국가산업단지의 가장 가까운 거리는 600m, 가장 먼 곳은 3.5km가량 떨어져 있다.
또한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는 레미콘 공장은 석문초등학교로부터 북쪽으로 약 3.7km 떨어져 있다. 초등학교의 북서쪽으로 10.1km 떨어진 곳에는 국내 최대 화력발전소인 당진화력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이처럼 석문초등학교는 4km를 훌쩍 넘는 10km 떨어진 대기질 측정소로부터 미세먼지 정보를 받기에 석문초등학교가 제공받는 미세먼지 정보가 학교 현장의 정확한 대기질 상태를 보여준다고 단정할 수 없다. 더구나 측정소보다 더 가까운 곳에 화력발전소와 산업단지 시설이 있어,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으로 나타나는 석문초등학교의 대기질 상태는 현장을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왜곡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은현초등학교와 석문초등학교처럼, 가까운 측정소로부터 4km 이상 떨어져 있는 ‘미세먼지 사각지대’에 놓인 초등학교는 전국적으로 얼마나 될까?
전국 초등학교 6,316곳 중 1,868곳이 ‘미세먼지 정보 사각지대’
기후·생태 전문 독립언론 <살아지구>와 뉴스타파의 공동 분석 결과, 전국 6,316개 초등학교 가운데 29.7%에 해당하는 1,878개 학교가 4km 이상 떨어진 대기질 측정소로부터 미세먼지 정보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석문초등학교처럼 10km 바깥에서 잰 공기질 정보를 제공받는 초등학교도 전국적으로 589곳에 달했다. 또 20km 이상 떨어진 측정소로부터 미세먼지를 제공받는 초등학교가 69곳, 30km 이상은 13곳에 이른다.
극단적인 사례에 속하지만, 55km 떨어진 대기질 측정소에서 미세먼지 수치를 받아보는 초등학교도 있었다. 제주도 추자도에 위치한 추자초등학교가 해당하는데, 바다 건너 제주시 애월읍에 있는 측정소에서 잰 미세먼지 정보를 제공받고 있었다.
지역 별로 드러나는 ‘숨의 정보 격차’
그렇다면, 광역시도 별로 4km 이상 떨어진 대기질 측정소로부터 미세먼지 정보를 받는 초등학교는 얼마나 될까? 개수로는 경상북도가 가장 많았고, 비율로는 강원특별자치도가 제일 높았다.
강원특별자치도 내 초등학교 366곳 중 209곳이 4km 이상 떨어진 측정소로부터 미세먼지 정보를 받고 있었다. 전체 학교의 절반이 넘는 57.8%로, 전국에서 ‘미세먼지 사각 초등학교’ 비율이 가장 높다.
그다음으로 ‘미세먼지 사각 초등학교’ 비율이 높은 곳은 전라남도였다. 도내 452개 초등학교 중 257곳(56.8%)이 4km를 벗어난 측정소에서 미세먼지 정보를 제공받았다. 세 번째는 경상북도였다. 4km를 넘은 측정소에서 미세먼지 정보를 받고 있는 경북 지역 초등학교가 491곳 중 268곳(54.6%)으로 나타났다.
이어 충청남도는 422곳 중 218곳(51.6%), 전북특별자치도는 416곳 중 187곳(44.9%), 경상남도는 524곳 중 225곳(42.9%), 제주특별자치도는 119곳 중 51곳(42.8%), 충청북도 267곳 중 109곳(40.8%) 순으로 조사됐다.
반면, 서울특별시는 전체 초등학교 605곳 중 4곳만이 ‘미세먼지 사각지대’에 속했다. 단 0.7%로, 99.3%는 ‘정보 안전지대’에 속하는 것이다. 부산광역시는 304곳 중 8곳(2.6%), 광주광역시는 155곳 중 8곳(5.2%)이 대기질 측정소 4km 반경 바깥에 학교가 있다.
이어 대전광역시는 152개 초등학교 중 8개(5.3%), 인천광역시 272개 중 24개(8.8%), 대구광역시 242곳 중 25곳(10.3%), 울산광역시 122곳 중 16곳(13.1%), 세종특별자치시 53곳 중 8곳(15.1%)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전국 광역지자체별로 초등학교의 ‘미세먼지 정보 사각지대’ 비율을 보면, 지역별로 ‘숨의 정보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미세먼지 사각’ 초등학교의 비율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8번째 순위인 충청북도가 40.8%, 9번째인 경기도는 18.7%로 22%p 차이를 보인다. 대도시와 그렇지 않은 지역 간 ‘미세먼지 정보 격차’가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그러나 안전한 숨을 지키려면 반드시 필요한 정보 : ‘측정소 거리’
대기 상태가 안 좋은 날이면, 많은 시민은 휴대전화에 설치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대기질 정보를 받아 본다. 미세먼지를 포함한 대기질 정보는 일상생활의 필수가 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수치 정보가 어느 측정소에서 잰 것인지까지는 확인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와 측정소와의 거리’는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측정소 거리’야말로 ‘미세먼지 정보의 정확도’를 보장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살아지구와 뉴스타파가 함께 공개한 <미세먼지 사각 초등학교 검색기>에 들어가면, 자녀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물론 전국 6,316개 모든 초등학교가 대기질 측정소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검색기 바로 가기>
살아지구와 뉴스타파는 전국 대기질 측정소의 미세먼지 수치를 종합해 어느 지역의 아이들이 가장 심한 상태의 미세먼지에 얼마나 오랫동안 노출돼 있었는지, WHO 권고를 기준으로 아이들은 며칠이나 ‘건강하지 못한 숨’을 마셨는지 등 관련 보도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임병선 기자 bs@disappearth.org 메일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