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다른’ 주장 하나로 10년을 버틴 한수원

2021년 3월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전남대 조사에 대해 “어업피해 대상 어업을 선정하는 데 잘못 사용될 위험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고, 대법원도 두 달 뒤인 2021년 5월 서울고등법원 판결을 그대로 인용했다.

‘사실과 다른’ 주장 하나로 10년을 버틴 한수원
“국가 사업을 한다는 공기업인 한수원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기장 어민들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합의를 지켰으면 이렇게 오래 끌 일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기장 어민들은 2012년에 고리핵발전소 온배수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올해(2024년)가 끝나가는 지금도 보상에 대한 소송에 휘말려 있다.

1978년 고리핵발전소가 처음 들어서면서 온배수 어업 피해가 생기기 시작했다. 2008년, 한수원과 기장 어민들을 대표하는 기장어업피해대책위원회(이하 어대위)는 온배수 피해 보상 지급에 합의했다. 합의 내용은 피해 규모 조사를 전남대학교 수산과학연구소에 맡기고, 전남대가 내놓은 피해 규모에 맞춰 한수원이 어민들에게 보상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한수원은 2012년 5월, 전남대 조사가 끝난 이후에도 보상 지급을 거부했다. 전남대 조사 결과를 일방적으로 불합격 처리하고, 전남대 조사에 기반한 보상은 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갈등은 재판으로 이어졌다. 재판에서 한수원이 보상할 수 없다고 내건 주장의 근거는 단 하나다. ‘전남대 조사에 하자가 있다’는 것.

전남대의 조사 결과가 한수원의 주장 대로 ‘하자가 있는지’, 제대로 판단하려면 지난 재판의 내용을 살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남대 조사에 하자가 있다’는 한수원의 주장은 2021년에 끝난 재판을 통해 ‘틀렸음’이 확인된다. 2021년 3월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전남대 조사에 대해 “어업피해 대상 어업을 선정하는 데 잘못 사용될 위험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고, 대법원도 두 달 뒤인 2021년 5월 서울고등법원 판결을 그대로 인용했다.

기장 바다 뒤로 고리핵발전소가 보인다

‘용역비 재판’과 ‘약정금 반환 소송’

고리핵발전소 온배수 피해 보상 과정에서 발생한 재판은 두 개다. ‘용역비 재판’과 ‘약정금 반환 소송’이 그것이다. 

먼저, ‘용역비 재판’은 한수원과 전남대 수산과학연구소 사이 소송이다. 한수원은 전남대 조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소송을 제기했다. 2015년부터 2021년 5월까지 진행된 이 소송에서 한수원은 전남대 조사 내용이 잘못됐다고 했고, 전남대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은 대법원까지 갔다. 결과는 전남대의 승소, 한수원의 패소였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한수원은 기장 어민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한수원은 패소했지만, 재판부가 보고서의 내용 상 오류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고, 한수원이 보기에는 여전히 전남대 보고서가 틀린 내용을 담고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기장 어민들은 2021년 한수원을 상대로 ‘약정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쉽게 말해 한수원이 약속한 대로 전남대 조사 결과에 따른 보상을 지급하라는 소송이다. 올해(2024년) 10월, 부산지방법원은 한수원이 전에 약속한대로 기장 어민들에게 온배수 피해 보상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한수원은 보상을 거부한 채 항소했다. ‘전남대 보고서에 하자가 있다’는 주장도 굽히지 않는다. 더해 ‘전남대와 치룬 용역비 재판에서 하자가 있다는 (재판부의) 언급이 있다’는 주장까지 한다. 

기장수협과 한국수력원자력 사이 주고받은 공문. 기장수협이 어민들에 대한 온배수 피해보상 미지급 사유에 대해 묻자, 한수원은 '전남대 보고서 전반에 하자가 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온배수 피해를 입은 기장 어민들의 연령대는 대부분 70~80대다. 부산지방법원은 이들의 연령을 고려해 2심 판결 전에도 보상을 미리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한수원이 항소하며 어민들 입장에서는 ‘쓸 수 없는’ 돈이 됐다. 어민들은 ‘전력을 생산하는 공기업이 핵발전소 운영에 따른 온배수를 대량 방출했고, 그 결과 어업 피해가 명백하게 발생해 보상을 약속해 놓고도, 재판까지 끌고 가 보상을 무산시키려고 하는가’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어민들은 한수원이 ‘거짓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해 왔다. 

살아지구는 용역비 재판의 1심, 2심 판결서을 통해 한수원이 지난 10년간 주장해 온 ‘전남대 조사에 하자가 있다’는 말의 논리가 합당한지 취재했다. 

용역비 재판 : 전남대 보고서의 하자 여부를 따지다

전남대 보고서와 그 계약서 사본

한수원은 전남대 보고서에 기반한 보상금을 부정하며 “용역비 재판은 용역비 지급에 대한 판단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물론 ‘용역비 재판’의 성격 상 재판부가 직접 한수원이 어민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하지는 않은 것은 맞다. 

그러나 판결문의 내용을 보면, 전남대 보고서가 어민 보상의 근거로 쓰이지 못 할 만한 하자가 없음이 확실히 드러난다. 한수원과 전남대가 맞붙은 ‘용역비 재판’의 쟁점은 ‘전남대가 용역비를 받을 만큼 조사를 제대로 수행했는가’다. 법원이 이런 판단을 내리기 위해선 먼저, ‘조사 목적을 달성했는가’를 판단해야 했다. 

한수원과 전남대 사이 체결한 용역 계약서에는 조사 목적이 분명히 써 있다. “고리원전 4개 호기(3, 4호기 출력증강 포함) 어업 피해 보완 검증조사 및 신고리원전 1~4호기 운영 영향 예측 어업 피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어업 피해 범위, 어업 생산 피해율 등을 평가하고 감정평가법인에서 어업 손실 보상금액을 산정하기 위한 평가 자료를 제시하는 데 있다”고 돼 있다. 그리고 재판부는 전남대가 조사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는 데 문제가 없기에, 한수원이 용역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검증 대상은 당연히 재판의 불씨가 된 용역계약의 결과물인 전남대 수산과학연구소의 ‘고리 및 신고리 원전 운전 영향 기장지역 어업피해 조사용역 보고서(이하 전남대 보고서)’다. 앞서 전남대 수산과학연구소는 2011년 8월부터 2012년 5월까지 9개월 간 한수원의 용역을 받아 고리핵발전소 온배수에 의한 기장 어민들의 어업 피해 범위를 조사해 피해량을 산정했다. 더구나 전남대의 조사는 한수원의 추천으로 이뤄졌다. 

‘용역비 재판’은 2015년 시작해 2023년 5월까지 이어졌다. 1심, 2심 법원과 대법원은 모두 한수원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전남대의 손을 들어 줬다. 한수원이 주장하고 있는 ‘전남대 보고서에 하자가 있다’는 말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용역비 재판 1심 : 한수원의 주장의 4가지 근거, 모두 기각

1심 재판에서 한수원이 ‘전남대 보고서에 하자가 있다’고 주장한 근거는 크게 4가지다.

  1. 전남대의 보고서 내용이 계속 변경됐다.
  2.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다른 연구기관 조사결과와 연간 생산량, 시설면적이 다르다.
  3. 온배수 확산 면적에 학술적, 기술적 오류가 있어 신뢰하기 어렵다.
  4. 보고서 승인에 필수적인 자료를 전혀 제출하지 않았다.

한수원 주장 1 : 전남대 보고서 내용이 계속 변경됐다.

이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더 정확한 결과를 내기 위한 연구소의 선택’ 혹은 ‘내용 변경은 한수원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한수원의 시정요구 등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차이에 불과하므로, 이를 두고 피고 (전남대) 연구소가 보고서의 내용을 자의적으로 변경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한수원의 주장 2 : 온배수 확산 면적에 학술적·기술적 오류가 있어 신뢰하기 어렵다.

위 주장의 근거로 한수원이 제시하고 재판부가 판단한 오류의 근거는 아래와 같이 6가지다.

① 기상입력자료 중 바람자료를 고려하지 않았다.

② 온배수 방류수온을 임의로 설정했다.

③ 온배수 방류조건 중 온배수의 재순환효과를 고려하지 않았다.

④ 초기 수온에 대한 연직구배(바닷물과 온배수가 혼합될 때의 기울기)를 고려하지 않았다.

⑤ 조석 검증의 정량적 정도, 추계 관측 자료, 실험안별 연직확산계수(서로 다른 구간에서 기울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수치화한 것) 입력값 등이 보고서와 상이하다.

⑥ 1차 시정요구 당시, 용약시방서와 달리 수온 관측치와 감정 수온 사이 RMS(평균값을 구하는 데 쓰이는 척도) 오차가 1℃를 초과하는 1.48도로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부는 1심 재판에서 한수원이 내건 6가지 근거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중 ①, ③, ④, ⑤ 주장에 대해 ‘어떤 부분을 어떤 방식으로 고려하지 않아 조사에 오류가 있다는 것인지 한수원이 증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1심 판결문에는 “원고(한수원)의 주장이나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피고 연구소(전남대 수산과학연구소)가 보고서의 어느 부분에서 … 어떤 방식으로 고려해야 했음에도 이를 고려하지 않아, 이것이 이 사건 용역계약의 불성실한 이행이 된다는 것인지를 특정하기 어렵다”고 적혀 있다.

재판부는 ②에 대해서는 ‘수산과학연구소 측의 합리적인 답변이 있었음에도 원고는 동일한 부분을 지적하면서 다시 시정요구를 했다’고 판단했다. 전남대는 조사 현장 상황을 고려해 다른 방법을 썼는데, 한수원이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수정만 요구했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⑥ 주장의 경우, 기술적으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한계를 한수원이 계약 내용만 가지고 무리하게 요구했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1심 판결문에는 “하계(여름철)의 RMS 오차가 1℃를 넘는 것은 실측 조사의 한계로 보임에도 원고(한수원)는 이 사건 용약계약의 내용에 따라 RMS 오차가 1℃ 이하로 되도록 재검토하라는 요구만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한수원의 주장 3 : 비슷한 시기에 행한 다른 연구기관의 조사결과와 동떨어진 연간 생산량, 시설 면적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한수원이 언급한 다른 기관의 어업 피해 조사는 전남대 조사 직전 같은 목적으로 한국해양과학대와 부경대학교가 공동으로 내놓은 보고서를 의미한다. (이전 기사 참고) 

그런데 한수원과 전남대가 맺은 용역 계약서를 보면, 조사 결과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전남대 조사의 목적이 한국해양과학대와 부경대 공동조사를 검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업피해 조사 결과를 내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울지방법원 재판부는 한수원의 3번째 주장을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이 사건 용역계약 목적이 부경대학교와 해양과학대의 연구결과를 검증하기 위함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볼 때, 위 두 보고서와 차이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피고 연구소가 이 사건 용역계약을 불성실하게 수행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수원의 주장4 : “전남대 수산과학연구소가 어민들로부터 제출받은 실태보고서만 제출하고, (보고서) 검사에 필수적인 자료를 전혀 제출하지 않았다”

위의 한수원 주장과 달리, 전남대 측은 조사결과 보고서를 뒷받침하는 자료 19건을 법원에 제출했다. 1심 재판부는 “(19개 자료를) 제출한 사실이 인정되는데, 원고의 위와 같은 주장만으로는 피고 연구소가 이미 제출한 위와 같은 자료들 외에 검사에 필수적인 어떤 다른 자료를 제출하지 아니하였는지를 특정할 수조차 없다”면서 “원고는 4차례에 걸친 시정 요구과정에서 현장 관측 자료와 보고서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오히려 원고가 피고 연구소로부터 검사에 필요한 자료를 제출받았음을 추단할 수 있는 사정이다”라고 밝혔다. 

기장군에 위치한 해녀 동상

용역비 재판 2심 : 감정으로 다시 한 번 증명된 전남대 보고서 ‘하자 없음’

‘용역비 소송’에서 전남대 승소라는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 어대위 측은 한수원이 전남대 보고서에 따라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대위 측은 기장수협에도 도움을 청했다. 지역 수협은 관할 지역에서 발생하는 어민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역할도 한다. 당시 문용환 기장수협장은 한수원에 공문을 보내 온배수 피해 보상 요구에 대한 답변을 요청했다.

이때 한수원은 “이번 서울고등법원 상고심 판결은 전남대 용역계약 해제에 대한 정당성에 대한 판결에 불과하고 오히려 어업피해율 및 피해범위, 어업생산량 등 전남대 보고서 전반에 하자가 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법과 원칙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여야 하는 공기업으로서 현재 상태에서는 전남대 보고서를 기준으로 보상을 진행할 수 없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답변 공문을 보냈다.

용역비 재판의 명목은 용역비를 지급하냐 마느냐였지만, 재판의 실제 내용은 전남대 보고서 내용에 대한 검증을 담고 았다. 보고서의 내용을 먼저 판단해야 용역비 지급 여부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밝혔듯, 전남대와 한수원 계약 상 연구 용역의 목적은 ‘온배수에 의한 어업 피해 산정’이다.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문을 읽어보면, 한수원이 말한 ‘어업피해율 및 피해범위, 어업생산량 등 전남대 보고서 전반에 하자가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를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내용은 없다. 

재판부가 ‘일부 미흡한 부분이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한 건, 한수원의 여러 주장 중 ‘해양 물리’의 일부분과 ‘어업 생산량’의 암반 비율 일부분에 한정된다. 이 부분을 고려한 재판부의 결론은 ‘혹여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어업 피해 산정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했던 건 ‘법원 감정’이었’다. 재판부가 ‘미흡한 부분이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전남대의 승소 판결을 내린 결정적 근거는 법원 감정이다. 법원 감정은 판단을 내리기 힘든 전문적인 분야의 사안을 전문기관이 조사해 재판부의 판단을 돕는 제도다.

한수원의 주장 1 : 해양물리

한수원은 전남대 조사 결과에서 ‘해양물리’ 계산이 잘못돼 어업 피해 산정도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해양물리는 바닷물의 흐름이나 온도 변화 등을 다루는 분야로, 전남대 조사에서는 바다 온도 변화를 유발하는 온배수가 얼마나 멀리 퍼져 어업에 피해를 주는지 추산하는 데 쓰였다.

‘용역비 소송’의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전남대 보고서가 결론적으로 ‘해양물리’ 부분에 결격사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한수원은 ‘전남대 조사에 하자가 있다’는 주장을 증명하겠다며 법원에 요청해 ‘해양물리’, ‘어업생산량 암반비율’에 대해 감정을 수행했다. 국가기관인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민간기업인 (주)전략해양이 수행한 감정은 전남대가 잘못 계산했다고 주장한 부분을 찾고, 이를 고쳐 어업 피해 범위를 다시 정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감정의 결론은 전남대의 어업피해범위 계산이 일부 틀렸다고 가정할 때도 ‘어업피해보상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감정기관은 전남대의 어업피해 범위 산정을 위한 수치모형실험(여러 수치를 종합하고 프로그램을 통해 계산하는 방식)에 일부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바다를 관측한 결과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정기관은 이 지적을 반영해 다시 어업 피해 범위를 산정했다. 그러나 감정기관이 내놓은 온배수에 의한 어업 피해 범위는 전남대 조사 결과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감정기관은 “어업 피해 산정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0~3.2%)”고 결론 짓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였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결국, 피고(전남대) 연구소의 온배수 확산 수치모형실험 결과는 이 사건 용역계약에 따른 어업피해 대상 어업을 산정하는 데 잘못 사용될 위험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한수원의 주장 2 : 어업생산량

전남대와 한수원간 ‘용역비 소송’의 2심 재판에서 어업생산량 관련 쟁점은 5가지다. 이중 중 하나가 앞서 재판부가 오류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한 ‘암반비율 산정’이다.

① 성게알 생산량 기준이 잘못 기재됐다

고리핵발전소 가동 전까지 기장 해녀들의 주요 생산품목은 성게였다. 성게에서 사람이 섭취하는 부분은 ‘생식소’다. 성게 생산량의 기준에는 생중량과 운단 2가지가 있는데, 생중량은 성게 생식소 무게를 잰 것이고, 운단은 성게 생식소를 한 번에 판매하는 양만큼 모아 그 숫자를 세는 방식이다.

한수원은 전남대 보고서에 담긴 해녀들의 성게 생산량을 운단으로 한 것이 오류라고 주장했다. 운단으로 세면서 해녀들의 생산량을 과도하게 측정했다는 것이다. 한수원은 통계청이 성게 생산량을 생중량으로 잰다는 것을 근거로 댔다.

그러나 소송 과정에서 확인된 전남대 조사 중 당시 한수원 담당 직원이 보낸 메일을 보면, 성게 생산량을 ‘운단’ 기준으로 한다는 내용이 있다. 당시 한수원 고리본부 보상 담당자 문 씨는 전남대 수산과학연구소에 보고서 시정을 요구한 메일에서 “주요 내용 : 운단, 각피 생산량을 운단으로 통일”이라고 썼다. 또한 재판 과정에서 어대위는 애초에 ‘운단’이 합의 사항이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에 재판부는 통계청 자료만이 유일하게 신뢰할 만한 기준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성게 생산량 기준을 운단으로 설정한 부분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전남대와 한수원 간 계약에서도 꼭 생중량으로 측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② 암반비율 산정에 오류가 있다

암반비율은 특정 구역 바닷속 땅을 이루는 물질이 바위인지 혹은 모래인지 그 비율을 뜻한다. 해녀들은 전복, 소라 성게, 자연산 미역 등 수산물을 암반에서 채취하기 때문에, 어업 피해를 산정할 때, 암반비율은 필요하다.

감정기관은 해양물리 외에도 암반비율도 감정했다. 감정기관은 현장에서 측정한 수치를 내놨는데, 전남대 조사 결과와 차이가 나타났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런 차이가 “중대한 하자가 존재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용역계약에서 한수원과 전남대는 암반비율을 직접 측정하도록 정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많은 비용이 드는 암반비율 측정을 하지 않고 과거 암반비율 측정 자료를 활용한 전남대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③ 양식장 시설비율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양식산업발전법’에는 특정 어장에서 지나치게 많은 양식장 때문에 해양환경을 해치지 않도록 양식장을 일정 비율 아래로만 운영하도록 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법에서 정한 비율보다 더 많은 양식장이 운영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업피해를 산정할 때는 이 법에서 정한 양식장 비율을 반영한다. 법에서 정한 비율을 벗어난 양식장 면적을 제외하기 위해서다. 

재판 과정에서 한수원이 문제 삼은 건 ‘복합양식’의 시설 비율이다. 양식업을 할 때는 한 가지 종류의 수산물을 양식하기도, 여러 종류 수산물을 동시에 하기도 한다. 여러 종류를 양식하는 경우를 ‘복합양식’이라고 부르는데, 한수원은 전남대가 복합양식 시설비율을 어업 피해에 적용할 때 일부 중복 산정했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재판부는 “수월하게 수정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판단했다. 전남대 측이 복합양식의 시설 비율을 적용하면서 실수가 있었더라도 단순히 수치 변경으로 수정이 가능한 부분이므로, 어업 피해를 산정할 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④ 전남대 보고서 상 매년 어민들이 생산한 수산물의 양이 수정을 거치면서 변했다. (전남대가 보고서를 수정하며 연간어업생산량 수치를 변경해 믿을 수 없다)

전남대 보고서는 총 4번의 수정을 거쳐 3개의 보고서(초안, 1차 수정, 2차 수정, 최종)가 나왔는데, 한수원은 전남대의 3차 보고서와 최종 보고서에서 ‘연간 어업생산량’ 수치가 변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전남대 수산과학연구소는 ‘합리적인 산정’을 위해 기준을 다르게 적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차이일 뿐이라고 맞섰다. 전남대 측은 1차와 2차 보고서에서는 연구소가 판단했을 때 맞는 기준을 적용했다가, 한수원의 기준 변경 요청이 있어 3차 보고서애 변경해 반영했고, 최종 보고서에서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전남대 측의 입장을 받아들여 “연구소의 재검토 결과, 원래 기준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원래 수치로 돌아간 것에 불과하다”고 판결했다.

⑤ 비슷한 시기, 비슷한 내용을 조사한 한국해양대, 부경대 조사 결과가 전남대 조사와 차이가 있다

한수원의 이 주장은 1심에서도 기각된 바 있다. 한국해양대와 부경대가 먼저 조사한 결과와 전남대의 조사 결과가 다르다는 주장인데,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용역계약의 목적이 해당 연구결과를 검증하기 위한 것이므로, 기존 보고서와 차이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피고 (전남대) 연구소가 이 사건 용역계약을 불성실하게 수행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수원의 주장 3 : 기초자료 제출 요청에 불응하거나 불성실하게 답했다

한수원은 “전남대 수산과학연구소는 정당한 사유 없이 한수원의 기초자료 제출 요청에 불응하거나 불성실하게 응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2심 재판부는 “(전남대 연구소가) 필수 제출 요구 자료, 1~3차 시정 요구에 대해 성실하게 답변하거나 자료를 제출했고, 이를 기초로 1, 2차 수정 보고서, 최종 수정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했으므로 정당한 이유 없이 불응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수원의 주장 4 : 용역계약에 명시된 현장조사 등 실측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한수원은 전남대 수산과학연구소가 모든 형태의 어업에 관해 빠짐없이 현장 조사하고, 어업을 할 때 쓰는 어장의 실제 이용면적과 그물의 규격을 정확하게 실측한 자료에 근거해 어업 피해를 산출하고, 모든 자료를 제출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남대 측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조사는 한국해양대와 부경대의 보고서를 검증하고, 그 내용을 반영해 어업 피해를 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따라서 현장조사를 모두 새로 할 필요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2심 재판부는 “현실적으로 제한된 시간과 자원으로 모든 양식어업의 실제 이용면적을 확인하거나 모든 정치망(어망의 일종) 및 정치성 구획어업(특정 구역에 그물을 설치해 어류를 잡는 방식의 어업)의 그물을 확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빠짐없이 현장조사를 실시하기는 어려운 점 등을 감안”해 기존에 존재하는 자료를 기초로 각 어업에 관한 사항을 확인 검증하는 등의 방법으로 용역 수행을 했다고 해서 계약을 어긴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역시 전남대 손을 들어줬다. 

‘용역비 재판’의 당사자였던 전남대 수산과학연구소 이성훈 수산해양산업관광레저융합과 교수는 “(용역비) 판결은 (전남대) 보고서 내용에 대한 검증이 맞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살아지구>에 말했다

어민이 기장 바다에 있는 양식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중요한 건 한수원이 ‘어떤 합의를 했는가’이다.

어민과 한수원 간 피해 보상 합의서에는 ‘기장어대위와 (한수원) 고리본부는 검수가 완료된 기장지역 어업피해조사 최종보고서 및 감정평가 결과를 이의 없이 수용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성훈 전남대 교수에 따르면, 온배수에 의한 피해를 입기 전 어업 생산량의 경우 한수원이 인정하는 부경대, 한국해양대 보고서도 전남대 보고서의 조사 방식과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다. 어업 피해를 산정하기 위해서 온배수 피해를 입기 전 어업 생산량을 조사하는 게 꼭 필요한데, 이 수치에 차이가 적다는 설명이다. 

전남대 보고서에 따른 보상 금액이 큰 이유는 단지 피해 범위가 넓게 산정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해양물리 분야의 감정까지 받아 ‘피해보상에는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어업피해 범위를 정하는 것은 온배수 양, 바다의 흐름, 바람 등 여러 조건을 입력해 컴퓨터로 계산하는 ‘수치모형실험’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방식은 100% 정확할 순 없다. 따라서 관건은 ‘어떤 합의를 했느냐’다.

한수원은 전남대 보고서가 나오면 보상하기로 어대위와 합의서를 썼다. 따라서 한수원은 보상을 거부하려면, 전남대 보고서를 보상의 근거로 삼기에 타당하지 않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한수원은 이를 입증하지 못했다.

한수원과 어대위 사이 체결한 합의서 중 일부분. 전남대에 조사를 맡기며 작성한 문서다.

우리가 외면한 전기의 또 다른 비용, ‘온배수 피해’

기장 앞 바다의 온배수 배출은 전기 생산의 또 다른 비용으로써, 고리핵발전소가 전기를 생산하면서 기장 어민들이 떠안은 희생이다. 기장 앞바다에서 어업 활동을 하지 않고 편하게 전기를 쓰는 나머지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온배수 피해보상이란 마땅히 지불했어야 할 비용이다. 그러나 온배수 문제가 처음 나타난지 30년, 합의 결과가 지켜졌어야 할 시점이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어민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한수원을 찾아가 항의하고, 피해 조사 합의를 요구했다. 30년이 지나는 사이 한수원 본사 직원과 한수원 고리본부 직원들은 지금까지 수차례 바뀌었을 뿐, 변한 건 없다. 2001년 산업통상자원부가 기장에 또 신고리핵발전소를 짓겠다고 했을 때에도 어민들은 기존 온배수 피해에 대한 보상 없이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보상은 이뤄지지 않은 채 핵발전소만 추가로 건설됐다. 

기장 어민들에게 재판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재판 외에 여러 방법으로 호소했지만, 돌아온 건 기만 혹은 침묵이었다. 2022년 감사원에 감사를 의뢰했지만 각하했고, 2024년 4월에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도 열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민들은 다시 묻는다. “이게 대한민국 발전공기업이 할 일이냐?”고.

2024년 4월 24일, 부산광역시 기장 어민들은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위치한 대통령실 앞까지 상경해 집회를 열었다. 어민들은 대통령실이 한수원에 대해 온배수 피해보상 미지급 관련 조치를 해 줄 것을 요구했다

임병선 기자 bs@disappearth.org 메일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