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의 버팀과 2주의 희망 그리고 기약없는 기다림
기장 어민들은 한수원이 1978년 고리핵발전소 운영하면서 배출하기 시작한 온배수로 인해 미역 양식장을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이 악화되고, 해녀들이 채취할 수산물이 사라졌다며 보상을 요구해 왔다. 이번 재판에서 기장 어민들이 청구한 보상금은 20년 전 한수원이 보상을 약속했던 금액과 해당 기간 이자를 더한 금액이었지만, 재판부는 이자를 뺀 원금만 인정했다. 비록 재판부가 당초 청구 금액을 다 받아 준 것은 아니나, 인고 끝에 얻어낸 승소다.
지난달(10월) 2일,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은 부산 기장 어민들이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한수원이 기장 어민들과 합의했던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내용으로 판결했다. 기장 주민들이 지난 30년 동안 한수원과 갈등을 빚었던 보상 문제가 법적으로 타결된 것이다.
기장 어민들은 한수원이 1978년 고리핵발전소 운영하면서 배출하기 시작한 온배수로 인해 미역 양식장을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이 악화되고, 해녀들이 채취할 수산물이 사라졌다며 보상을 요구해 왔다. 이번 재판에서 기장 어민들이 청구한 보상금은 20년 전 한수원이 보상을 약속했던 금액과 해당 기간 이자를 더한 금액이었지만, 재판부는 이자를 뺀 원금만 인정했다. 비록 재판부가 당초 청구 금액을 다 받아 준 것은 아니나, 인고 끝에 얻어낸 승소다.
재판부는 보상금 지급을 바로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보상금 가집행’을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피해를 본 기장 어민들의 나이가 많아 빠른 보상금 지급이 필요하다는 어민 측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가집행은 항소·상고를 통해 고등법원이나 대법원으로 재판이 이어지더라도 보상금을 미리 지급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바닷속 수산물이 사라지고 그 원인으로 온배수 피해를 호소하며 보상을 요구하던 30~50대 어민들은 이제 막내도 칠순을 바라보는 노인이 됐다. 1심 선고 며칠 전에도 보상을 기다리던 해녀 1명이 세상을 떠났다.
기장 어민들의 1심 승소의 기쁨도 잠시 뿐, 다시 법정에 나서야 한다. 한수원은 1심 판결에 불복해 10월 21일, 부산고등법원에 항소장을 냈다. 또 한수원은 항소하며 1심의 가집행의 중단을 함께 신청했다. 한수원이 항소하면서 어민들은 ‘죽기 전에 보상을 본다’던 희망은 잠시 접어야 했다.
한수원은 항소한 이유로 고리 핵발전소의 온배수 배출로 어업 피해를 조사했던 ‘전남대 보고서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수원 고리본부 담당자는 <살아지구> 기자에게 “전남대 보고서에 하자가 있다는 게 전남대와 한수원 간의 ‘전남대 보고서 용역비 소송’에서 나온 법원의 판결이었다”고 말했다. 반면, 어민들은 한수원과 전남대 간에 벌어진 소송에서 “전남대 보고서에 문제가 없다고 했으니 보상을 지급하라”고 맞서고 있다.
여기서 ‘전남대 보고서’는 전남대가 2008년 한수원으로부터 연구 용역을 받아 전남대가 기장 주변의 온배수 피해에 대한 연구를 담은 조사 보고서를 말한다. 또 ‘전남대와 한수원 간 전남대 보고서 용역비 소송’은, 앞서 언급한 전남대가 수행한 기장 주변 온배수 피해 조사의 결론인 ‘전남대 보고서’가 어업 피해 범위와 어업 피해 정도를 과다하게 책정했다며 한수원이 전남대를 상대로 낸 소송을 말한다. 이 2015년부터 2021년 5월까지 6년을 끌었는데, 한수원이 패소했다.
한수원의 주장대로 기장 주변의 온배수 피해에 대한 연구를 담은 전남대 보고서가 잘못 됐으니, 보상을 하지 않아도 되는지, 어민들의 주장대로 전남대 보고서가 타당하니 이를 근거로 보상을 하는게 맞는지 판단하려면 과거 재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온배수 배출 이후, 한수원의 약속과 불이행의 역사
기장 앞바다에 쏟아내는 뜨거운 물, 온배수로 인한 어업 피해는 1978년 고리 핵발전소가 가동하며 시작됐다. 어민들은 온배수 배출이 시작되며 수온이 높아져 미역 양식업을 할 수 없게 됐고, 해녀들이 채취할 수산물이 사라졌다고 호소했다. (이전 기사 참고)
1991년, 기장 18개 어촌계 어민들은 온배수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기장군 ‘어업피해 보상대책위원회’(이하 어대위)를 꾸렸다. 어대위는 1990년대 말, 한수원과 보상을 받기로 합의했다. 당시 한수원은 피해 조사를 한 뒤에 보상액과 범위를 정하겠다고 했다. 이때 부경대와 한국해양대가 한수원의 의뢰로 공동조사를 실시했다.
한수원의 온배수 피해 조사 연구 용역 의뢰는 모두 3번 이뤄졌다. 먼저 부경대와 한국해양대 공동조사(2000~2007년), 두 번째가 전남대 조사(2008~2011년), 마지막으로 부경대 조사(2023~ 2024.9.)
어민들은 2007년 부경대와 한국해양대가 공동조사한 첫 번째 어업 피해 조사 보고서를 인정하지 않았다. 어민들은 보상 범위가 실제 피해 범위보다 좁고, 조사가 잘못됐으니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조사방법 등에 대해서는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며, 연구자의 주관이나 논리 전개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다”면서도 “온배수 확산역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므로 향후 어업 피해 조사 시 검증 차원의 조사를 실시할 것을 권장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수원과 어민들이 합의해 부경대와 한국해양대 공동조사 보고서는 파기하기로 합의하고, 재조사를 확정했다.
2008년 한수원과 어대위 중 한 측이 일방적으로 정한 기관이 아니라 양 측이 합의한 기관에서 보고서를 내기로 합의하면서 두 번째 조사는 전남대가 맡았다. 어대위와 한수원은 전남대의 어업 피해 조사 보고서에 담긴 피해 범위와 어업 생산량에 따라 보상해 주기로 합의했다. 당시 기장군 어대위 위원장과 한수원 고리원자력본부의 도장이 찍혀 있는 합의서에는 “검수가 완료된 기장지역 어업 피해 조사 최종 보고서 및 감정평가 결과를 이의 없이 수용하는 것을 이행·보증”한다고 적혀 있다.
전남대 조사는 앞서 진행한 부경대와 한국해양대 보고서를 검증하고 피해 보상을 위한 어업 피해 범위와 생산량을 정하는 형식이었다. 2008년 연구가 시작돼 2011년 12월, 보고서가 완성됐다. 전남대 보고서는 기존 부경대와 한국해양대 조사보다 어업 피해 범위를 폭넓게 잡았다. 전남대는 고리 핵발전소를 기점으로 남쪽 11.5km, 반면, 부경대는 7.3km가 어업 피해 범위로 봤다.
전남대 보고서가 공개된 이후에도 한수원과 어대위 간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한수원이 전남대 보고서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며, 보고서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정부기관과 공기업의 용역은 최종 검수를 거치도록 돼 있는데, 한수원이 전남대 보고서의 검수를 통과시키지 않은 것이다.
한수원의 이상한 검수 과정
전남대 수산과학연구소는 보고서 완성 직후 이상함을 느꼈다고 <살아지구>에 말했다. 전남대 수산과학연구소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한수원 보상 담당자는 전남대에 여러 차례 보고서 수정을 요구했다고 했다. 모두 5번의 수정 작업을 거쳤으나, 한수원은 끝내 전남대 보고서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에 따라 용역비 일부도 지급하지 않았다.
한수원이 전남대 보고서를 거부하는 사이, 기장 어민들도 분열됐다. 2008년 12월 어촌계 10개는 어대위에서 나와 ‘기장수협 어업피해보상 상임위원회(후에 고리원전 어업피해보상 상임위원회로 바뀜, 이하 상임위원회)’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1차 조사에 해당하는 부경대와 한국해양대 보고서에 보상 범위에 속하는 어촌계들이 이 단체에 들어갔다. 그리고 부경대와 한국해양대 조사에 따라, 중간보상을 수령하기로 한수원과 합의했다. 이후 상임위원회와 한수원은 새로운 조사를 통해 보상 금액을 다시 책정하기로 합의했다. 이렇게 진행된 조사가 올해 9월 마무리된 부경대 조사다.
어대위와 상임위원회 등으로 어민단체들이 나뉘면서 기장군 어민은 부경대 조사에 따른 중간보상을 받는 어촌계 10개, 전남대 보고서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는 어촌계 8개로 갈라졌다. 다만, 해녀의 경우 자신의 어촌계가 중간보상을 받는 어촌계에 속하더라도, 전부 전남대 보고서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는 쪽에 서 있다. 부경대와 한국해양대의 공동조사에서는 고리핵발전소 가동 전, 실제 생산했던 수산물을 기록하지 않았다고 해녀들은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민 단체의 분열은 한수원이 의도한 측면도 있다. 김종학 어대위 위원장은, 2007년 한수원 보상 담당자 G씨는 김종학 어대위 위원장의 사무실로 찾아와 한 가지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부경대 보고서에는 포함되지 않는 김 위원장의 가두리 양식장에 대해 ‘원하는 양껏’ 보상을 주겠다고 G씨가 제안했다는 것이다. 대신 전남대 보고서에 의해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어민들의 주장을 철회해 달라는 대가였던 것이다.
그러나 전남대 보고서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던 김 위원장은 한수원 측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 이후 공교롭게도 어대위에 떨어져 나온 ‘상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실제 2014년 경찰 조사에 따르면, 한수원은 가장 먼저 어대위를 빠져나간 길천, 칠암, 이천 3개 어촌계의 어대위 탈퇴를 유도한 사실이 나온다. 김종학 어대위 위원장이 한수원 보상담당자 G씨를 기장수협장 선거에 개입했다며 고발한 데 따른 경찰 조사였다. 당시 경찰 조사에 따르면, “3개 어촌계를 탈퇴하게끔 해 다른 어민들도 탈퇴하게 하려고 노린 것이 아니냐”고 경찰이 묻자, 한수원 직원 G씨는 “예, 솔직히 저희 회사에서는 그런 의도가 있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한수원 직원 G씨는 이후 기소되지 않았다.
한수원과 전남대 간 어업 피해 조사보고서의 ‘용역비 지급 소송’
전남대 보고서를 인정하지 않았던 한수원은 2015년 전남대를 상대로 보고서의 연구 용역비로 지급했던 9억 7,200만 원을 돌려달라는 ‘용역비 반환 소송’까지 냈다. 용역비 반환 소송에서 쟁점은 크게 2가지였다. 전남대가 산정한 ‘온배수로 인한 어업 피해 범위’와 ‘수산물 생산량’이다. 한수원은 두 가지 모두에서 하자가 있으니 용역비를 돌려달라고 주장했고, 전남대 측은 자신들의 보고서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해 용역비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반박했다.
6년의 소송 끝에 재판은 전남대의 승소로 끝났다. 2021년 5월, 대법원은 전남대학교 수산과학연구소는 어업피해 보상금 산정 용역을 제대로 수행했으니, 한수원이 용역비를 지급하는 게 맞다는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기장 어민들은 이제야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한수원은 용역비 잔금 3억 3,100만 원을 전남대에 지급했다. 그러나 전남대의 승소로 보상을 받을 수 있겠다는 어민들의 희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수원은 앞선 ‘용역비 반환 소송’은 그저 용역비 소송일 뿐, ‘전남대 보고서에 하자가 있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어민들에게 보상을 지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수원은 용역비를 지급하는 게 맞다는 당시 법원의 판단의 배경에서 ‘전남대의 어업피해 보상금 산정 용역이 제대로 수행됐다’는 전제는 무시한 것이다.
결국 기장 어민들은 2021년 9월, 한수원과 어민들과 약속했던 합의서를 바탕으로 ‘약속한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의미의 ‘약정금(보상금) 지급 소송’을 제기해야 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올해 10월, 어민들은 승소했다. 하지만 한수원은 1심 판결에 불복해 부산고등법원에 항소했다.
한수원은 모두 패소한 전남대와의 ‘용역비 소송’과 어민들과의 ‘보상금 지급 소송’에서도 이 ‘전남대 보고서에 하자가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어민들의 승소로 끝난 ‘한수원과 어대위 간 보상금 지급 소송”에서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재판부는 한수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불합격을 통보하고, 돈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재판부는 앞서 전남대 승소로 마무리된 ‘한수원과 전남대 간 용역비 지급 소송’의 결과를 인용해 ‘전남대 보고서’가 보상의 근거로 쓰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재판부는 ‘선행 용역비 소송에서 전남대 보고서가 어업피해 보상금을 산정하는 기초 자료로 적합하다고 판단됐다’고 밝히며, ‘한수원은 판단을 뒤집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그런데도 한수원은 ‘전남대 보고서에 하자가 있다’는 주장만 되풀이하며, 전남대 보고서에 기초한 피해 보상을 거부하고 있다.
살아지구는 한수원과 전남대간 ‘용역비 지급 소송’의 1심, 2심 판결문과 재판의 증거자료를 입수하고 분석해, 한수원 측의 ‘전남대 보고서에 하자가 있다’는 주장이 타당한지, 이에 대해 법원은 구체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다음 기사를 통해 상세히 보도할 예정이다.
임병선 기자 bs@disappearth.org 메일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