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초와 성게가 녹는 앞바다, 기장 #2

해초와 성게가 녹는 앞바다, 기장 #2

기장군 ‘큰 공장’과 해녀, 어민들

기장 바다의 수온 증가, 식물성 플랑크톤 감소, 어류의 감소는 어민들에게 피해로 연결된다. 수온 상승은 기존에 살던 해조류가 자라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해조류를 먹는 성게나 멍게의 개체수에도 영향을 준다. 또한 식물성 플랑크톤의 감소는 어류가 덜 찾아오는 바다로 만든다. 이렇듯 기장 바다의 변화는 해녀 말고도 미역 양식, 육상 양어장, 어선을 이용한 고기잡이에도 영향을 미친다.

애초 기장 지역의 해녀들에게 말똥성게와 자연산 미역, 우뭇가사리가 주된 수입원이었다. 다른 지역 해녀들은 보라성게를 채취하는 데 반해, 기장 지역에서는 말똥성게가 주로 나왔다. 해녀들은 성게알을 최고급 식재로 여기는 일본에 주로 수출했다. 

1988년 작성된 양산군(당시 기장군은 양산군에 속함) 수산협동조합의 말똥성게 운단(껍질을 벗겨내고 실제로 먹는 알 부분) 판매 실적을 보면, 한해 378톤이었다. 이로부터 35년이 지난 지난해(2023년) 기장군 수산협동조합의 실적은 단 4톤이었다. 조합을 거치지 않고 해녀들이 직접 파는 양까지 합해도 연 10톤 정도다. 말똥성게의 채취량이 35년 전보다 2%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같은 자료 기준, 자연산 미역의 경우 1988년 기준 1만 2,712톤이었으나 2007년에는 37톤에 그쳤다. 2007년 이후 자연산 미역은 거의 나지 않고 있다. 이제 바다에 채취할 만한 자연산 수산물이 거의 없는 상황이어서, 해녀들은 군에서 지원하는 종묘 사업이 있을 때만 주로 물질에 나선다고 했다. 

올림픽이 열렸던 해로 기억했다. 1988년 10월 중하순, 양식장에 미역을 채취하러 간 날이었다. 부산광역시 용호동 앞 바다에서 미역 양식을 해오다 1981년부터 기장군 대변리로 터를 옮긴 김영태 씨는 그때부터 고리핵발전소 온배수의 영향을 느꼈다. 그가 대변리 미역 양식장을 옮겼을 때는 고리1호기만 가동 중이었다.

1983년, 1985년, 1986년 연이어 고리 2호기, 3호기, 4호기가 가동을 시작했다. 미역 양식이 잘될 때도, 안 될 때도 있었지만 1988년부터는 작황이 변했다. 미역이 영 자라지 못했다. 보통 8월 말에 미역 포자를 뿌리는데, 얼마 뒤에 확인해 보면 전혀 자라지 않았거나 드문드문 자란 잎에 구멍이 뚫리거나 노랗게 변해 있었다. 이른바 ‘바늘구멍병’이었다. 바늘구멍병은 미역 잎에 0.5~1.5mm 정도의 작은 구멍이 생기는 병인데, 이럴 경우 상품가치를 잃는다.

한국해양대 영남씨그랜트사업단 해양생태기술연구소는 기장 미역에 바늘구멍병이 생기는 원인을 찾기 위해 2년간 연구한 끝에 2009년 12월 ‘기장 미역 바늘구멍증 발생원인 추적을 위한 기초 연구’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는 주된 원인으로 수온을 지목한다. 바닷물에 사는 작은 생물인 ‘요각류’ 중 미역을 먹고 사는 일부 종은 수온이 높아지는 시기에 갑자기 늘어나면서 미역 잎에 구멍을 낸다는 것이다. 보고서의 결론은 미역 양식을 끝내는 시기를 앞당기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될 경우 어민의 입장에서는 생산량이 줄어든다.

<기장 해역에서 미역에 구멍을 내는 요각류의 밀도를 나타낸 연구자료. 검은 원이 클수록 요각류 밀도가 높은 지점이다. 고리 핵발전소에 가까운 지점에서 요각류 밀도가 높게 나타났다> 사진 부경대학교 대학원 해양학과 신상희

미역은 한여름이 지나 포자를 뿌린 뒤, 1년에 네 번 채취할 수 있다. 8월 말쯤 씨에 해당하는 미역 포자를 뿌리면 미역은 바닷속 양식 시설에 자리를 잡는다. 두 달 뒤인 10월 중하순이 되면 1년 첫 수확을 할 만큼 자란다. 한번 자르면 금새 또 자라나 몇 번이고 채취를 반복할 수 있었다. 한해 세, 네 번 수확이 가능했다. 

그런데 이제 그럴 수 없다. 포자를 뿌려도 미역이 자리를 잡지 못하기 일쑤다. 또한 잎에 구멍이 생겨 여러 번 수확이 어려워졌다. 수온이 상승한 이후 일어난 현상이다.

한때 기장 앞바다는 영양분이 풍부하고 조류 흐름도 적당해 미역 배양에 안성맞춤이었다. 국내 최초로 미역 배양장을 설치한 것도 기장군이었다. 미역 배양장이란 미역 양식의 첫 단계인 포자를 생산하는 시설을 말한다. 그러나 수온이 오르면서 기장에서 더 이상 배양이 불가능해졌다. 기장 어민들이 온배수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 건 기장에 80여 개에 달했던 미역 배양장이 문을 닫게 된 이후부터다. 

결국, 일부 어민들은 충남 태안군에서 미역을 길러 가져와야 했다. 미역이 아직 덜 자랐을 때는 따뜻해진 기장 앞바다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1년생인 미역은 매년 새로 시설에 포자를 심어야 한다. 1년에 한 번 태안에서 미역을 가져오는 날은 밤을 꼬박 새운다. 태안 양식장에서 미역을 채취하고 냉동 탑차에 실어 5시간을 달려 기장으로 온다. 도착하면 바로 미역을 옮겨 심어야 해서 눈코 뜰 새 없다. 냉동고에 오래 넣으면 죽을 우려가 높아서다. 

<태안에서 일정 기간 길러낸 미역을 옮기는 어민들. 2019년 10월 27일 촬영됐다> 사진 기장군어업피해대책위원회

김영태 씨는 이렇게라도 기장에서 미역 양식을 계속할 방법을 찾았다. 김 씨와 달리, 태안에서 포자를 가져오지 않고 씨앗을 늦게 뿌리는 방식을 택한 미역 양식업자들도 일부 있다. 이럴 경우 미역 성장이 느려져, 1년에 한 번밖에 채취하지 못한다. 그만큼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영태 씨는 ‘기장미역 축제도 열릴 만큼 기장은 여전히 미역이 잘 자라는 곳’이라는 한수원 직원의 말을 듣고 기가 찼다고 했다. 정부는 2007년부터 기장군 대변리 일대를 ‘기장 미역·다시마 특구’로 지정해, 해마다 4월에 미역 축제를 열지만, 미역 양식 어민들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다. 2014년, 어민들은 한수원에 자신들의 고충을 알아달라는 의미에서 충남에서 미역을 가져오는 과정을 보여주겠다고 3차례 요청했다. 하지만 한수원은 묵묵부답이었다. 김 씨는 한수원이 핵발전소 온배수 때문에 미역 양식업자들에게 일어난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살아지구>에 말했다. 

결국, 어민들은 어촌계 단위로 모여 기장군 어업피해보상대책위원회(이하 어대위)를 꾸렸다. 어대위에는 기장군 내 모든 어촌계 총 18개가 참여했다. 어촌계는 보상 문제를 어대위에 위임했다. 어대위는 1990년대 말, 한수원과 협의해 보상을 받기로 합의했다. 한수원은 우선 피해 조사를 한 뒤에 보상액과 범위를 정하겠다고 했다. 

2007년, 약 10년의 기다림 끝에 한수원이 부경대와 해양과학대에 연구 용역을 의뢰해 공동조사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는 어업 피해 범위를 고리 핵발전소를 기준으로 남쪽 7.8km로 산정했다. 김영태 씨가 속한 대변어촌계는 고리 핵발전소로부터 약 10km 떨어져 있다. 대변어촌계는 기장군 내 18개 어촌계 중 3번째로 남쪽 끝이다. 부경대와 해양과학대 보고서에 따르면, 대변어촌계는 보상 대상이 아니다.

<부경대가 산정한 수온 상승 1℃ 범위와 어촌계 위치를 표시한 그래픽. 붉은색에 가까울수록 수온이 높아진 영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촌계 위치는 대략적으로 표기했다>

김영태 씨를 포함한 어민들은 이 보고서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분명 미역이 안 자라고 잎에 구멍이 생기는 현상을 눈으로 확인했다. 또 대변어촌계보다 남쪽에 있는 마을에도 성게 씨가 말랐는데도 조사보고서는 위쪽 동백 어촌계 일부까지만 고리 핵발전소 온배수의 영향이 있다고 썼다. 이렇게 김 씨가 속한 대변어촌계를 포함해 공수, 동암, 두호, 서암, 신암, 월전, 학리 총 8개가 한수원의 보상 대상에서 빠졌다. 

기장 어민들은 ‘지역 언론과 인터뷰할 때마다 50년간 제대로 된 보상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고 말하면, 기자들이 진짜냐고 묻는다’고 했다. 반면 한수원은 ‘이미 막대한 보상을 한 바 있다’고 주장한다.

<고리핵발전소 바로 서쪽에 위치한 길천마을>

한수원이 내놓은 공식 자료에 따르면, 현재까지 완료된 고리원전 어업피해 관련 보상은 1980년 6월, 1990년 3월, 1992년 11월에 미역 양식장에만 이뤄졌다. 하지만 이 보상은 온배수 피해에 대한 보상과 성격이 다르다. 고리 핵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어업이나 조업을 할 수 없는 구역으로 설정돼 양식장 문을 닫게 될 경우 지급되는 보상이기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어업 구역이 없어진 데 따른 보상 외에, 온배수 배출과 해수 온도 상승에 따른 ‘피해보상’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한수원의 고리 핵발전소 어업 관련 피해 보상 내역. 10개 어촌계와 합의한 중간보상은 실측 조사 이후 다시 보상하는 상황이라 표에 포함되지 않았다>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핵발전소 온배수가 쏟아지는 바다를 끌어안고 산 지 46년째, 온배수의 문제를 알게 된 건 30년 전, 그리고 한수원에 보상을 요구한 지는 20년이 지났다. 한때 어민들은 나라를 믿었다. 전기 공장을 짓는다는 한전을 믿고 기장 바다를 내줬다. 어민들은 온배수로 인한 피해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신고리 1호기와 2호기를 지을 수 없다고 반대하자, 이번엔 산자부가 온배수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했다. 신고리가 다 지어지자, 산자부는 더 나서지 않았다. 

어민들은 지금까지 모은 자료들을 갖고 감사원을 찾아가 국민감사까지 청구했지만, 재판 중이라며 사법 당국으로 해결을 떠넘겼다. 2024년 4월 4일, 어대위와 함께하는 어민들은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나서 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다. 산자부가 약속했던 문제 해결을 대통령실 차원에서 살펴달라는 호소였으나, 진전은 없었다. 핵발전소가 만든 전기로 모든 국민이 혜택을 보는 동안, 기장 어민에게 남은 것은 국가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다.

임병선 기자 bs@disappearth.org 메일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