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군 ‘큰 공장’이 가져온 변화
지금은 부산시 기장군으로 편입된 곳, 경상남도 양산군이던 1978년 봉수마을(현재 고리) 해안가에 ‘큰 공장’ 하나가 들어섰다. 처음에 주민들은 마을에 ‘큰 공장’이 생기고, 동네가 발전할 거라고 믿었다. 당시만 해도 그 ‘큰 공장’이 매년 뜨겁게 데워진 바닷물을 수억 톤씩 쏟아내며, 인근 바다를 조용히 변화시킬 것이라고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변화를 제일 처음 알아챈 건 해녀들이다. 별다른 장비 없이 맨몸으로 잠수한다는 뜻의 ‘나잠어업인’으로 불리는 기장 해녀들은 바다의 변화를 몸으로, 수경 너머로 지켜봤다.
‘큰 공장’의 정체는 국내 최초 상업발전 핵발전소인 ‘고리 1호기’다. 1978년 가동 직후부터 부산시 기장과 울산시 울주 바다에 뜨거운 물을 쏟아냈다. 기장 어민들은 그 ‘공장’이 전기를 만드는 곳인지, 뜨거운 물을 쏟아내는지 제대로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기장군에는 1983년 7월, 1985년 9월, 1986년 4월에 각각 고리 2호기, 3호기, 4호기를 추가로 건설해 가동했다. 이후 신고리 1,2호기가 더해지고, 2017년 6월 고리 1호기가 영구정지한 뒤로는 총 5개 핵발전소가 운영 중인데, 핵발전소가 쏟아내는 온배수량은 매년 60억t에 이른다. 공식적인 온배수량은 2012년부터 측정됐다.
핵발전소에서 뜨거운 물을 쏟아내는 이유는 핵발전을 하면서 바닷물을 냉각수로 쓰기 때문이다. 핵발전소가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 가동 중 달궈진 설비를 식힐 바닷물이 필요하다. 물을 끌어올려 설비를 식히는 데 쓰인 바닷물은 원래보다 7~12도 따뜻해진 상태로 다시 바다에 나온다. 이걸 핵발전소 ‘온배수’라고 부른다. 쏟아내는 온배수량이 많다 보니, 바닷물과 섞이면서 주변 일대 수온을 높이게 된다.
수산 전문가에 따르면, 해수 온도가 1도 오를 때 바다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지상에서 기온이 10도 상승한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화력발전소도 온배수를 배출하지만, 열이 전기로 전환되는 효율이 낮은 핵발전소는 유독 많은 온배수가 발생한다. 한국 핵발전소 운영 초기부터 온배수 문제를 들여다본 고(故) 한상복 경상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온배수가 바다에 전달하는 열량은 발전량 대비 2배에 달한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문동어촌계에서 물질을 하는 김정자(68) 씨는 온배수의 영향을 가까이서 목격했다고 했다. 그가 2000년대 초, 고리 핵발전소 온배수가 흘러나오는 통로인 배수구 인근에서 성게 제거 작업을 할 때였다.
“그때 어촌계장이 원전 앞에 해산물 퇴치하러 가자고 해서 간 적이 있어요. 그 당시에는 뭐가 뭔지도 몰랐는데, 막상 가보니까 온배수 물이, 뜨뜻한 물이 (엄청나게) 흘러내리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입구(배수구)로 가게 됐는데 온배수가 내려오는 곳에 바당(바다) 밑이 하얗게 돼있더라고. 거기에 성게가 막 까맣게 있더라고요. 한번 손으로 만져보니까 퍼석퍼석하게 어그러지더라고요. 따뜻한 물이 강물 흐르듯이 촤악 흘러내려오는기라요. 그렇게 흘러내려오니까 어디까지 가겠나 싶더라고요. 한 10년 지나니까 돌이 전부 새하얗게 변했어요.” (김정자 해녀)
온배수가 배출되는 배수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기장 바다 생태계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고리 핵발전소 가동 이전에 바다 생태나 환경을 기록한 조사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고리 핵발전소에서 2.9km 떨어진 곳에서 물질을 하는 문중어촌계 해녀들은 고리 1호기 가동 직후부터 감태가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바다에서 사라진 게 뭐가 있냐는 <살아지구> 취재진의 질문에 “돌아삔다(돌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문중어촌계, 문동어촌계, 신암어촌계 해녀들은 하나같이 “감태마저 뿌리가 녹아버렸다”고 입을 모았다. 감태는 바다 생명력을 가늠하는 해조류 중 하나다.
감태는 기장에서 곰피라고도 불린다. 미역과 다시마 등 다른 해조류보다 따뜻한 물에 잘 버틴다. 감태는 미역과 다시마보다 1도 정도 온도가 높은 물에서도 살 수 있다. 그러니 감태를 포함해 우뭇가사리, 모자반, 미역 등 해조류가 가득하던 바다에서 감태마저 사라졌다는 건 재앙이 아닐 수 없다. 미역 생산에 방해가 된다고 ‘잡초’ 취급을 받던 잘피도, 천초라고 불리는 우뭇가사리도 이젠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신암어촌계는 고리 핵발전소로부터 5~6km가량 떨어져 있다. 신암마을 어장에서 먼저 사라진 건 멍게였다. 연화리에 위치한 신암어촌계 김정자(77) 해녀는 핵발전소가 들어오기 전 기장 바다를 멍게와 해조류가 가득한 ‘꽃밭’이라 회상했다. 20여 년 전부터 먼저 멍게가 보이지 않더니, 해삼과 소라 등도 조금씩 자취를 감췄다. 현재 해녀들이 체감하는 바다 생물 양은 고리 핵발전소 가동 전 대비 1% 수준, 그러니까 99%의 생물이 사라진 것이다.
기장 바다가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기장군이 조사해 2020년 발표한 ‘해조자원 서식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장군 바다 모든 지점에서 ‘갯녹음’ 혹은 ‘백화현상’이라고 불리는 해조류 소멸 현상이 진행 중이다.
기장 바다의 해수 온도 상승은 뚜렷하다. 1993년, 한상복 경상대학교 교수(당시 국립수산진흥원 해양과장)가 작성한 ‘고리연안의 수온 분포’ 문서에 따르면, 고리 핵발전소 주변 20km의 평균 수온은 고리 핵발전소 가동 전인 1970년에 15.27도였다. 고리 1호기 가동 1년 후인 1979년에는 1970년에 비해 0.91도 상승했고, 1990년에는 1970년 대비 1.25도 올랐다. 다만 이 같은 수온 자체의 변화는 자연적 요인을 분리해서 볼 수 없다는 한계를 감안해야 한다.
이후 국립수산과학원에서 고리 핵발전소 온배수가 어떻게 기장 바다 수온을 높이는지 넓은 해역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기존 수온 측정 자료와 바람이나 물의 흐름 등 여러 자료를 입력하고 컴퓨터로 계산하는 ‘수치모델’ 방식에서 벗어나 온도 측정 위성 영상 분석을 활용한 연구였다.
연구 결과, 고리 핵발전소가 배출하는 온배수로 인해 남쪽으로 최대 8.43km까지 수온이 1도 상승하는 것으로 나왔다. 해수 1도 상승은 어업에 곧바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준치다. 학계에서는 바다 생태계가 변하는 것까지 고려해 어업 피해 범위 기준을 0.5도 상승으로 잡는다.
낚시꾼들 사이에서 핵발전소 주변 바다가 열대처럼 변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핵발전소 주변에서 주로 열대에 사는 감성돔, 돌돔 등을 낚을 수 있다는 ‘돔 포인트’ 정보가 인터넷에 공유될 정도다.
고리 핵발전소 인근 바닷물은 높은 온도도 문제지만, 유달리 쓴 맛이 난다. 물에서 쓴 맛이 나는 이유는 핵발전소가 바닷물을 냉각수로 쓸 때 배관을 막히지 않게 하는 염소계 화학물질이나 거품을 없애기 위한 소포제를 쓰기 때문이다. 문중어촌계 임덕이 해녀(74)는 물질을 하다 옆에 큰 배가 지나가거나 큰 파도가 오면 쓴 맛이 느껴지는 바닷물이 입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바닷물은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해조류, 플랑크톤 등 작은 생명체로 가득하다. 동물성 플랑크톤이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어류는 다시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는 생태계 구조다.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인 식물성 플랑크톤은 바다의 풍요로운 생명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그런데 플랑크톤 등 바닷속 작은 생명체는 냉각수와 함께 살아서 핵발전소에 들어갔다가 죽어서 배출된다. 죽음의 원인은 대략 두 가지다. 냉각수 배관으로 빨려들어간 작은 생물은 갑작스레 뜨거워진 물을 견딜 수 없게 된다. 또 핵발전소를 운영할 때 배관이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해 물을 빨아들일 때 염소 계열 화학물질을 쓰는데, 이게 플랑크톤에겐 치명적이다. 1992년 환경생물학회지에 실린 서울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고리)핵발전소 냉각수로 쓰인 물에서 식물성 플랑크톤의 치사율은 평균 55%에 이른다.
1989년 부경대학교(당시 부산수산대학교)가 고리원전 가동 전후에 나온 연구 결과를 분석해 내놓은 결론에 따르면, 온배수로 인해 핵발전소 인근 해역 1km는 식물성 플랑크톤의 종류나 종별 구성이 달라지면서 생태계가 불안정해졌다고 한다.
부경대 연구에서는 핵발전소로부터 1km를 벗어난 해역에서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이성훈 전남대 수산해양산업관광레저융합과 교수는 “바다는 연결돼 있기 때문에 먹이생물인 식물성 플랑크톤이 먹이사슬에 연관되는 건데 한쪽에 영향이 없다고 다른 쪽도 없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냉각수 운영에는 물고기도 직접 영향을 받는다. 냉각수로 쓸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구멍에 있는 ‘스크린’에 많은 수의 물고기가 걸려 죽기 때문이다. 스크린은 작은 물질을 걸러내는 ‘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핵발전소 냉각수에 물고기와 같은 큰 생물이 배관으로 들어가는 걸 막는 용도다. 강한 힘으로 바닷물을 끌어올리는 탓에 물고기가 스크린에 붙어 압사한다.
1997년 부경대학교 해양학과와 국립수산진흥원 연구원이 함께 발간한 ‘고리 원자력발전소 취수구 스크린에 의해 사망하는 어류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1987년 4월부터 1989년 3월까지 2년간 14만 7,647마리의 물고기가 스크린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물고기 종류는 104종에 이른다. 당시 가동 중이던 고리 1~4호기만 따진 결과다. 한국전력공사 전력연구원은 매년 스크린에 걸려 죽은 물고기 현황을 담은 보고서를 내지만 일반에는 공개하지 않는다.
플랑크톤 감소나 스크린에 의한 피해 등 무엇이 정확한 원인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고리 핵발전소 가동 이후 기장 바다에 어류 양과 종류가 준 것은 분명하다. 1999년 전력연구원이 발표한 ‘고리 원자력발전소 환경조사 종합 평가 보고서(1987~1996)‘에 따르면, 고리 핵발전소 주변 해역에서 발견되는 물고기는 1987년 36~40종에서, 1998년 기준 4~26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1만 5,000㎡안에서 잡히는 물고기도 평균 15.1~99kg에서 4.4~12.5kg으로 줄었다.
임병선 기자 bs@disappearth.org 메일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