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물로 핵발전소 운영할 수 있을까

정부가 핵발전소(원자력발전소)를 새로 짓는다고 발표할 때마다 따라붙는 말이 있다. ‘서울에도 하나 지어라’는 말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물, 뉴스 댓글에 종종 등장하는 이 주장을 정부가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한국 에너지 공급 체계에 대한 심오한 고민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말이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한국 전력 생산과 소비 구조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윤순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2004년에 쓴 논문 ‘에너지와 환경정의’에서 “경제성장 동력으로 투입되는 화석연료와 원자력은 대기오염과 수질오염, 해양오염, 토양오염, 해양열오염 등 다양한 형태의 환경 문제를 유발한다”면서 “화석연료와 원자력으로 다양한 사회 경제 활동이 가능하며 생활이 보다 편리해지지만 모든 사람에게 이련 혜택이 동일하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핵발전소 건설 논의에서 서울이 거론되는 이유는 다른 지역에서 피해를 감수하고 생산한 값싼 전기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경제 활동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전기를 생산하는 곳과 전기를 사용하는 곳의 거리가 멀면 특고압송전선을 더 많이 건설해야 한다. 2023년 12월 31일 기준, 사용량이 많은 곳으로 전기를 옮기기 위한 거대한 철탑이 전국에 4만 693개 있고, 특고압송전선은 1374km 길이로 펼쳐져 있다. 핵발전소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현재 한국 핵발전소는 모두 수도권과 멀리 떨어진 해안에 있다. 핵발전소는 총 26기가 가동 중이다. 부산시 기장군에 5기, 울산시 울주군 2기, 경북 경주시에 5기, 전남 영광군에 6기, 경북 울진군에 8기로 총 용량 26GW다. 반면 전기를 쓰는 곳은 대부분 대도시여서 전기를 쓰는 곳으로 옮기기 위해 송전 설비가 많이 필요하다.

서울 핵발전소 안 짓는 이유, 물 때문 아니다
서울에 핵발전소를 짓자는 주장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반박은 발전용수 문제다. 발전소를 식히고, 물을 수증기로 바꿔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발전용수가 부족해 한강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 기록과 한국수력원자력 입장을 보면, 한강을 발전용수로 쓰는 데 지장이 없다.
한강 물로 핵발전소 운영이 가능한지가 중요한 이유는 가능한데 짓지 않는 상황과, 불가능해서 짓지 못하는 상황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핵발전소를 해안에 지어야 하는 이유를 ‘냉각수’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다. 만약 부산이나 울산 근처에 지은 이유가 냉각수 문제가 아니라 사고를 대비한 거라면, 서울에 사는 사람은 절대 위험에 노출되선 안 되고 부산과 울산 시민은 위험에 노출돼도 괜찮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2016년 11월 27일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와 탈핵단체가 참여한 한 토론회에서 김유창 동의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에게 "서울 한강변에 원전을 지으면 안 됩니까? 지진 위험이 있는 활성단층도 없고, 송전 선로도 짧아서 원전 입지로 더 낫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했다.
당시 이종호 한국수력원자력 기술본부장은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탈핵단체는 "한강에 원전을 짓는 것이 가능하다면, 왜 반경 30㎞ 안에 340만 명의 인구가 밀집된 부산, 울산, 경남에 또 원전을 짓냐"며 "선택의 문제라면 새 원전은 수도권에 분산해 짓는 것이 공평하지, 부산은 괜찮고 서울은 안 된다는 건 무슨 논리냐"고 말했다고 부산일보는 전했다. 추후 고리본부 홍보팀 측은 "한강변에 지을 경우 냉각수가 충분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며 "기술본부장이 왜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했는지 모르겠다"고 매체에 해명했다.
정부는 과거 한국에 첫 핵발전소를 건설할 당시, 서울은 아니지만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 인근 한강변을 후보지로 검토한 적이 있다. 핵발전소 부지 선정 기록을 보면 핵발전소를 수도권에 짓지 않은 이유는 냉각수 때문이 아니라 ‘안전’ 때문이다.
핵발전 관련 정책을 담당한 원자력처는 한국전력, 석탄공사와 함께 1964년부터 첫 핵발전소 부지 선정에 착수했다. 이들은 먼저 경인지방, 부산-울산 지방, 목포 지방, 군산 지방 네 곳을 예비조사 대상으로 선정하고 각 지역의 물 확보 방안을 비롯해 인구밀집지 간 거리, 강우량, 홍수 등을 검토했다. 그리고 1965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부지조사단과 함께 부산-울산 지방에서 월내리-길천리-고리와 공수포(현재 송정) 2곳, 경인 지방에서 경기도 고양시 행주 지역 1곳 등 총 3곳을 적격부지로 선정했다. 예비조사 조건을 검토했을 때 한강변도 문제가 없었다는 뜻이다.
정부는 이후 동래군 고리(현재는 부산광역시 기장군)를 최종 선정했다. 한전은 자체 보고서에서 “행주 지역은 인구가 밀집한 서울에 인접할 뿐만 아니라 계절에 따라 탁월풍이 서울을 향하여 부는 빈도가 높은 점을 감안해 원자력발전소 부지로는 기타 지역보다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고 썼다. 즉 서울 시민 안전 문제로 행주 지역을 제외한 것이고, 냉각수 확보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은 이미 서울에서 원자로를 운영한 경험이 있다. 원자로란 핵발전소에서 에너지 생산의 근본이 되는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는 장치로, 1958년 한국전력은 연구를 위해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중앙연수원에 ‘트리가 마크2’를 도입했다. 1972년에는 바로 옆에 ‘트리가 마크3’ 원자로를 추가했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연구진이 작성한 트리가 마크3 해체 계획을 보면 원자로 냉각 시설은 수조, 펌프, 열교환기, 알루미늄 배관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연구용 원자로는 핵발전소에 비해 규모가 훨씬 작다.
핵발전소 발전용수 조건과 한강
사회적 합의를 이뤄 서울에 핵발전소를 짓고 한강 물을 발전용수로 쓴다고 가정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수량과 수온이다. <살아지구> 분석에 따르면 한강은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한다.
한국 핵발전소는 바닷물만 발전용수로 쓴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원자력발전기를 식히거나 전기 발전을 위해 터빈을 돌리는 데 활용하는 바닷물 양은 연간 약 230억t이다. 이 물은 사용하고 난 뒤 바다로 배출한다. 1000MW 발전용량을 가진 핵발전소는 초당 60t 정도의 물을 통과시키는데, 연간으로 치면 19억t 정도다. 발전 과정에서 증발하는 양은 거의 없다.
환경부 예측에 따르면 2025년 한강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는 46.4억t이다. 핵발전소를 한강에 짓는다면 매년 19억t을 써야 하고, 이는 기존에 쓰던 물의 40%나 되는 양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발전용수로 사용한 물은 증발하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배출한다.
문제는 물이 적은 시기다. 한강은 한국에서 유량이 가장 많은 강이다. 유량은 강에서 흐르는 물의 양을 뜻한다. 비가 오면 늘어나고, 비가 계속 오지 않을 땐 줄어들며 시시각각 변한다. 계절 별로 유량 편차가 작은 유럽과 달리 한국 강은 물이 적게 흐를 때와 많이 흐를 때 차이가 크다. 역대 한강의 최소유량은 1998년 12월 15일, 초당 16.78t까지 줄어들었다. 이렇게 이례적인 경우가 아니어도 물이 적은 겨울에 종종 초당 60t 아래로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발전용수를 활용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지금 한국에서 하는 것처럼 한 번 쓰고 배출하는 방식 외에도 물을 여러 번 쓰는 방안이 널리 사용 중이다. IAEA는 발전용수를 쓰는 방식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 번째는 관류냉각, 물을 끌어올린 다음 발전용수로 사용하고 바로 내보내는 방식이다. 한국의 핵발전소는 모두 관류냉각을 쓴다. 두 번째는 냉각탑 방식이다. 냉각탑 방식은 물을 끌어올려 발전용수로 쓰고 난 다음 냉각탑에서 식혀 그 물을 다시 발전용수로 공급한다. 세 번째는 냉각연못으로, 연못을 만들거나 기존에 있던 호수에서 확보한 물을 발전용수로 쓴다. 쓴 물은 연못으로 배출해 식힌 다음 다시 쓴다. 한국에서는 바닷물을 활용한 관류냉각 방식만 쓰고 있어 물이 많이 필요한 것뿐이다.

관류냉각은 아주 많은 양의 물을 꾸준하게 공급하는 방안이 필수적이다. 물이 줄어들면 핵발전소 가동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대부분 국가에서 핵발전소를 내륙에 지을 때는 관류냉각을 쓰지 않고 냉각탑이나 연못 방식을 쓴다.
프랑스 파리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노장(Nogent) 핵발전소는 세느 강을 발전용수로 쓰는데, 냉각탑 방식이다. 세느 강의 평균 유량은 초당 560t으로, 한강에 비해 물이 적지만 냉각탑 방식을 쓰기 때문에 운영하는 데 지장이 없다. 미국 조지아주 해치(Hatch) 핵발전소의 경우 알타마하 강에서 끌어올린 물로 냉각탑을 활용해 발전소를 운영한다.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핵발전소는 강 옆에 호수를 만들어 발전용수를 확보하고, 아르헨티나 엠발세(Embalse) 핵발전소에서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연못을 쓴다.

물을 순환해서 쓰는 냉각탑이나 연못 방식은 물을 대량으로 보충할 필요가 없다. 물을 식힐 때 증발하는 양과 냉각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일부 배출하는 양만 다시 보충하면 된다. 물이 장치 안을 순환하기 때문이다. IAEA 보고서는 핵발전소를 운영할 때 손실되는 물의 양을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냉각탑이나 연못 방식으로 냉각하는 핵발전소는 초당 1.057t의 물이 필요하다. 1년간 끊임없이 같은 양의 물을 공급한다고 할 때, 발전용수로 필요한 물 양은 3336만t 정도다. 2025년 한강에서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는 46.4억t이며, 정부는 이미 여유 있게 공급할 능력이 있다.
관류냉각 방식은 발전용수를 7~10℃ 정도 상승시켜 바다나 강으로 흘려보낸다. 이런 물을 ‘온배수’라고 부르는데, 이미 한국 발전소에서 나오는 온배수는 인근 지역 해양생태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냉각탑이나 연못을 쓸 경우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온배수 문제는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에 모두 해당하며, 피해는 강과 바다를 가리지 않는다. 고리핵발전소가 대표적이다. 동해안에 막대한 온배수를 배출하면서 기장군 바다에서는 원래 자라던 해조나 해초가 사라졌다. 이로 인해 지역 어민들과 오랜 갈등을 빚고, 약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어민 측에게 부당한 재판을 이어가고 있다. 관련기사
핵발전소는 일정 온도 이하의 물을 냉각수로 활용해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한국원자력안전위원회는 핵발전소에서 쓰기 위해 끌어올리는 물의 한계수온을 34.9℃로 정한다. 한계수온은 핵발전소를 무리 없이 운전할 수 있는 물의 온도를 의미하며, 물을 끌어올리는 지점 기준이다. 한강 상류에 있는 대청댐 물의 온도는 가장 수온이 높은 9월 기준 평균 26.6℃, 충추댐의 경우 28.5℃다.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핵발전소가 9월 12일 기준 바다에서 끌어올린 물의 온도는 28.7℃로 비슷하다.
임병선 기자 bs@disappearth.org 메일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