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이 앗아가는 바닷새들의 목숨 : 포항 임곡항에서

2025년 1월 12일 일요일 낮 포항시 남구 임곡항 바다는 평온해 보였다. 한쪽에는 오징어 그물을 정리하는 어민 부부가, 다른 한쪽에서는 다음 날 새벽 출항을 준비하는 외국인 선원 2명만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지만 항구는 파도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다. 멈춰 있는 배와 각종 쓰레기가 너울거릴 뿐이었다.
플라스틱 요구르트 병, 섬유유연제 비닐 포장지, 먹다 버린 수박 조각 등 물에 떠 있는 쓰레기 사이로 흰 깃털로 덮인 유선형 물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죽은 바닷새다. 항구를 둘러보니 바닷새 사체 39개가 임곡항에 떠다니고 있었다.
임곡항의 바닷새 사체는 대체로 해양보호생물인 바다쇠오리고, 또 다른 해양보호생물인 흰수염바다오리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제주대학교에 재학 중인 채유민(22) 씨는 개인적으로 1월 5일, 1월 13일 두차례 임곡항에서 바닷새 사체를 조사했다. 채 씨는 5일에 바다쇠오리 사체 46개, 흰수염바다오리 사체 6개, 아비류 사체가 7개라고 집계했다.13일에는 바다쇠오리 사체 40개 흰수염바다오리 사체 4개 아비류 사체 5개를 발견했다.


다만 발견한 당시 사체를 수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조사 결과를 가지고 하루에 얼마나 죽었는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중복 사체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 어떤 종류의 바닷새가 죽어 있는지만 참고했다.
임곡항에서 본 죽음은 빙산의 일각
임곡항에서 오징어와 멸치 등을 잡는 어민은 지금 보이는 바닷새 사체는 아주 적은 편이라는 의외의 답변을 했다. 임곡항 어민 김점선(66) 씨는 “다른 해에 비하면 사체가 엄청 적은 것”이라고 말했다. 바다쇠오리와 흰수염바다오리처럼 작은 바닷새는 보통 멸치를 잡기 위해 친 그물에 걸려 죽어서 발견되는데 올해는 포항 바다에 멸치 자체가 적었고, 바닷새 사체도 평소에 비해 적었다고 설명했다. 멸치를 잡는 촘촘한 그물은 정치망이라고 부르며, 특정 구역에 설치했다가 나중에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조업을 한다.
김 씨는 그물을 건져올렸을 때 바닷새들이 날개가 걸려 죽은 채 발견된다고 말했다. 조류가 아직 살아있다면 그물에서 풀어주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사체가 많을 때는 그물을 들어올리기도 힘들 정도라고 기억했다. 남편인 이정호(70) 씨는 바닷새들이 멸치를 잡으러 잠수했다가 그물에 걸리는 것 같고, 그물에 걸리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해 죽는다고 봤다.
어민 부부는 임곡항에 있던 바다쇠오리 사체는 항구 바깥에서 버린 것들이 바람에 밀려들어온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팔거나 먹지 않는 바다쇠오리 사체를 항구까지 가져올 이유가 없고, 대부분의 어민은 바다 위에서 그물을 털 때 바다에 버린다는 것이다. 훨씬 많은 바닷새가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어민들이 바다쇠오리를 비롯한 바닷새를 일부러 잡을 이유는 없다. 팔거나 먹지 않기 때문이다. 김점선 씨 부부는 1960년대에는 잡힌 바닷새를 삶아서 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먹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원하지 않게 해양생물을 잡는 일을 ‘혼획’이라고 부른다.
동해안 전반에서 바닷새 혼획, 당국은 인지 못해
바닷새 혼획은 동해안 전반에서 일어난다. 개인 연구자들이 국내 바닷새 혼획 사례를 조사해 2012년 6월 발표한 ‘동해안 연안 어업에 의한 해양성 조류의 피해’ 논문에 따르면 동해안 여러 항구에서 바다쇠오리 외에도 오리류, 아비류, 논병아리류 등 많은 종류의 바닷새가 혼획으로 죽는 것이 확인됐다. 조사는 2008년 11월 14일부터 2009년 3월 1일까지 2주 간격으로 강원도 강릉시, 속초시, 고성군에 위치한 31개 항구에서 이뤄졌다.
해양보호생물인 바닷새가 그물에 의해 매년 죽지만 해양수산부 차원에서 이뤄지는 보호 대책은 없다. 혼획으로 얼마나 죽는지 알아보는 실태조사 노력조차 없다. 대책을 찾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인 ‘얼마나 죽는가’에 대한 조사도 없는 것이다. 의도치 않은 죽음일지라도 혼획은 한 종의 생존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바다쇠오리나 흰수염바다오리 개체수에 혼획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도 파악할 수 없는 상태다.

해양수산부는 현재 공식적으로 바다쇠오리를 비롯한 조류를 혼획 피해를 입는 생물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고래 등 일부는 혼획 피해가 있는 생물로 인식하고 어구 개발 등 조치를 검토하고 있지만, 바다쇠오리 같은 조류가 혼획 대상이라는 점은 공식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얼마나 많은 해양보호생물이 혼획에 의해 죽는지 실태조사도 당연히 없다.
시에서는 어민들에게 조류독감(AI) 방지를 위해 항구 근처에 버리지 말라는 당부만 했다고 한다. 때문에 어민 입장에서는 바다에 버리고 오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다.
의도치 않은 죽음일지라도, 종 생존의 문제
동해안에서 일어나는 바닷새 죽음은 최근 들어 생긴 일이 아니다. 2009년, 강원도 동해시 망상해수욕장에서 1000여 마리 바다쇠오리 사체가 한 번에 수거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당시 바다쇠오리 사체에 상처가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죽음의 원인을 혼획으로 지목했다.
바다쇠오리를 비롯한 일부 바닷새는 개체수가 회복되는 속도가 느리다. 조류가 한꺼번에 많이 죽으면 그 수가 다시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말이다. 바다쇠오리는 태어난 지 3년 이후부터 번식이 가능하고 알을 2개만 낳는다. 생물이 태어난 지 얼마 안된 때부터 번식이 가능하고, 한꺼번에 많은 자손을 낳는다면 개체수 회복이 빠르지만 바다쇠오리는 번식 속도가 느린 편이다.
조류학자 최창용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교수는 “해외에서는 해양성 조류 혼획을 어떻게 줄일지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실태조사도 없는 상태”라면서 “동해안에서 연간 1만 마리 정도의 바닷새가 혼획된다는 추정이 있고, 한꺼번에 1000여 마리가 발견되는 사례도 있지만 해양수산부조차 조류에 혼획 문제가 발생한다는 인지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살아지구는 후속 기사를 통해 미국과 일본 등 해외에서는 어민이 원하지 않는 혼획을 줄이는 방법을 어떻게 논의하고 있는지 알아본다.
임병선 기자 bs@disappearth.org 메일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