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바다만 원래대로 돌아오면 보상이고 뭐고"

정치를 하는 사람이나 산업계에 있는 사람과 환경 피해에 대한 얘기를 하면 대뜸 보상 문제부터 꺼냅니다. ‘거기 이번에 얼마를 받았다더라’, ‘우리가 이번에 얼마를 보상했다더라’ 하는 얘기들입니다. 반면 피해 당사자와 얘기하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부터 말합니다. 특정 시설이 들어서고 나서 자신의 일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또 하고 있던 농사나 물고기잡이 등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를 말하죠.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층간소음에 예민합니다. 특히 윗집이나 아랫집이 공사라도 한다면 하루 종일 신경이 곤두서는 경험을 합니다. 대부분은 이 변화를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입니다. 저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제가 문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영원이 아니라서’라고 생각합니다. 며칠이면 끝날테니 참아보자고 말이죠. 그러나 집 옆에 폐기물 소각장이 들어서고 마을에 매일 화물차가 드나들거나, 발전소가 들어서 온배수가 나오고 바다가 변해 어업을 하기 힘들어진다거나 하는 상황은 ‘영원’을 가정해야 하는 문제가 됩니다. 자기 삶이 끝날 때까지 이어질 가능성 있는 문제니까요. 

고리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 뒤 부산 기장 바다에서 채취할 전복, 미역이 없어졌다는 한 해녀는 제게 “바다만 원래대로 돌아오면 보상이고 뭐고 상관 없지”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일흔 넘은 나이에도 종종 물질을 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보상은 물론 중요한 문제입니다. 피해자의 삶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니까요. 취재를 하면서 느끼는 건 보상이 삶에 대한 존중이라는 점입니다. 기존에 일궈 놓은 삶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그리고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에 대한 존중의 표시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피해자가 느끼는 삶의 파괴를 보상이 과소평가했을 때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발전소 온배수처럼 지속적인 피해를 주는 문제가 한 번의 보상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보여질 때 더 그렇죠.

황정은 작가의 소설 <백의 그림자>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언제고 밀어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이 문장은 주택 재개발 얘기입니다. 다만 저는 댐 건설로 인한 수몰 예정지, 소각장 건설 예정지 주변 마을 등 삶이 있는 모든 곳에 적용할 수 있는 얘기라고 봅니다. 보상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가에 따라 갈등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피해를 일으킨 사람들은 법을 가장 앞에 내세웁니다. 실제로 보상은 법에 의해 이뤄지니까요. 법은 환경 피해의 종류를 구분하고, 종류와 규모에 따라 보상하도록 정해 놓습니다. 그러나 정량화할 수 없는 ‘삶’이라는 요소를 법이 정의하긴 어렵습니다. 

피해를 일으킨 사람들이 방어적으로 법을 내세우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우리 사회는 환경 피해를 비용으로 여기니까요. 그 자체는 틀린 접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게 돈으로 환산된다는 걸 고려하면요.

그러나 합의에 이르는 길에서 환경 피해에 대한 보상을 ‘줄여야 하는 비용’이 아닌 ‘마땅히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라고 여기면 대화 방식부터, 보상 절차까지 많은 게 변하지 않을까요. 피해를 일으킨 사람들과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대화하는 방식은 사소해 보이지만 갈등 해결에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관점이 바뀌면 이런 대화 방식에도 긍정적 변화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에 더해 모든 사람이 환경 피해를 마땅히 지불해야 할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전기료, 수도세 등을 정하는 데도 변화가 생기겠죠.

혹은 보상이 아니더라도 자신들의 행위가 어떤 영향을 줄지 고려한다면, 피해를 줄일 수도 있을 겁니다. 최근 발전소 인근 양식장에서 만난 한 기술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발전소가 청소를 하는 시기에 양식장 어류가 죽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물에 어떤 물질이 나오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거였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거 바라지도 않아요. 발전소 청소 시기만이라도 알려주세요. 그 시기 피해서 양식을 할라니까"라고요.

임병선 기자 bs@disappearth.org 메일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