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는 안전하다고 했는데...부산 산업단지 공기 '건강 위험'
부산광역시 사하구에 위치한 신평·장림 산업단지 인근의 유해대기물질이 ‘건강 위험’ 수준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반면 같은 기간 부산시 조사는 ‘안전하다’고 평가했다. 촘촘하게 측정하지 않는 지자체의 측정 시스템에서 발생한 사각지대다.
부산시 사하구 신평·장림 산업단지 인근은 부산시 내에서 공기질이 나쁜 곳으로 꼽힌다. 신평동 사랑채아파트에 거주한다고 밝힌 박 씨 부부는 “화학약품같은 냄새는 종종 난다. 특히 날씨가 안좋을 때, 그러니까 저기압일 때 특히 많이 난다”고 <살아지구>에 말했다.

학계 "발암 위험 기준 초과" vs 부산시 "안전 범위 내"
2025년 8월, 국제 학술지 Asian Journal of Atmospheric Environment에 부산 사하구 신평·장림 일반산업단지 인근 주민들의 휘발성유기화합물(이하 VOCs) 노출 위해도가 건강 기준치를 초과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VOCs는 상온에서도 공기 중으로 증발하는 특성이 있어 공기 중에 떠다니기 쉬운 일부 화학물질들을 의미하며, VOCs 중 일부는 사람에게 위해성이 있다.
이철민 서경대학교 나노화학생명공학과 교수 연구진은 2023년 1월부터 12월까지 약 1년간 산업단지 인근 5개 주거지역에서 위해성이 있는 VOCs의 공기 중 농도를 측정하고, 흡입과 피부를 통해 어떻게 사람들에게 유입되는지 종합적으로 분석한 건강위해성평가를 수행했다.
연구진의 종합위해성평가 결과, 발암물질 8종 가운데 메틸렌클로라이드를 제외한 7종이 발암위해도 기준(10만 분의 1)을 초과했다. 클로로폼, 1,2-다이클로로에테인, 트리클로로에틸렌, 에틸벤젠의 발암위해도는 일부 측정지점에서 1만 분의 1 수준을 넘어섰다. 이는 해당 물질에 평생 노출될 경우 1만 명 중 1명 이상에게 암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비발암물질 평가에서도 테트라클로로에틸렌은 모든 측정지점에서 위험지수(HI) 1을 초과했다. m,p-자일렌은 B와 C 지점에서, o-자일렌은 D 지점에서 각각 기준을 넘겼다. 위험지수 1 초과는 해당 물질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간·신장 손상, 중추신경계 영향, 감각 자극, 호흡기 문제 등 비발암성 건강영향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논문은 테트라클로로에틸렌에 대해 "발암과 비발암 건강영향 모두에서 위험 수준을 초과했다"며 "신평·장림 산업단지 업체의 40%가 1차 금속산업과 섬유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어 이 물질의 주요 배출원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산업단지 인근 주거지역의 총 5개 지점을 측정했다. A지점은 산업단지 북쪽, B지점은 산업단지 동쪽 경계 인근, C지점은 산업단지 남동쪽, D지점은 산업단지 남쪽, E지점은 산업단지 남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이들 지점은 산업단지로부터 직선거리로 수백 미터 이내에 있어 공단 배출 영향을 직접 받는 곳이다.
반면 부산시는 같은 기간 조사에서 ‘안전하다’는 결과를 내놨다. 정부는 위해성이 있는 VOCs를 유해대기물질로 구분하고, 각 지자체별로 공기 중 농도를 관리하도록 한다. 그런데 부산시 보건환경연구원의 2023년 조사에서는 장림동의 초과발암위해도가 100만 분의 1에서 10만 분의 1.7 사이로, "위해 우려 수준 미만"이라고 평가했다. 비발암 위해도지수도 0.000033으로 기준치 1을 크게 밑돌았다. 같은 기간에 대한 VOCs 위해성 평가 결과가 갈린 것이다.
'100번'과 '4번'의 차이
학계는 경고했고, 부산시는 낙관했다. 왜 이런 사각지대가 발생했을까. 결과 차이의 핵심은 측정 방식에 있다.
연구진은 1년 내내 주 1-2회 상시 측정을 실시했다. 겨울과 봄철(1-5월, 12월)에는 유해대기오염물질 농도가 높아지는 경향을 고려해 주 2회, 여름과 가을(6-11월)에는 주 1회 시료를 채취했다. 하루에 오전(9시-12시)과 오후(12시-15시) 두 차례씩 측정해 연간 약 100회 이상의 데이터를 확보했다.
반면 부산시 보건환경연구원의 조사는 분기별 1회(3월, 7월, 9월, 12월), 특정 지점에서 1시간 측정하는 방식이었다. 게다가 보건환경연구원의 조사 중 신평·장림 산업단지 인근 측정 지점은 3곳으로, 서경대학교 연구보다 측정 지점이 적다. 연간 총 4회 측정으로, 고농도 배출이 집중되는 시기인 1-2월에도 측정이 아예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보건환경연구원은 "실시간대기이동측정차량으로 각 지점에 정차한 후 1시간 측정 후 생성된 자료를 평균 5분 데이터로 변환하여 사용"했다고 밝혔다.
논문은 "흡입 노출이 종합 위해도의 99% 이상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주민들이 매일 들이마시는 공기가 건강 위험의 거의 전부를 결정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연 4회 특정 시점만 측정하는 방식으로는 고농도 배출 순간이나 야간·새벽 시간대의 오염을 포착하기 어렵다. 주민들은 365일 숨을 쉬지만, 행정의 측정은 1년에 4시간에 불과한 셈이다.
특히 보건환경연구원 스스로도 녹산국가산단 VOCs 연구에서 "신속한 배출원 추적을 위해서는 타깃 항목으로 최소화시킨 측정방법이 필요하다"며 "고농도 VOCs 측정구간에 대한 배출 의심 사업장을 집중관리하는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바 있다.
부산시 보건환경연구원 측은 “해당 논문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지 않았고 2023년 이후 측정과 관련한 별다른 조치는 없는 상태”라고 <살아지구>에 말했다.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는 상태라는 뜻이다.
촘촘한 측정이 시민의 호흡을 지킨다
논문은 "신평·장림 산업단지 인근 주민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주요 노출 경로에 초점을 맞춘 관리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논문을 작성한 이철민 교수는 <살아지구>와 전화통화에서 "해당 연구는 사하구 지역의 공기질을 감시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연구의 일환으로 진행한 연구사업의 일환이었고, 우리 연구진은 별도로 주변 주민들의 건강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평·장림 산업단지 관리 주체인 부산테크노파크는 기존 측정을 보완하려 했으나, 측정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준은 아니다. 부산테크노파크는 2024년부터 산업지대 내에 유해대기물질 측정소를 운영 중이다.
부산테크노파크는 실시간 측정 결과만 사하구 일부 지역에 전자 표지판 형태로 공개 중이다. 그런데 이 측정치는 주민들 건강에 위해성이 있는지까지 판단할 만한 자료는 아니다. 부산테크노파크는 현장에서 채취한 공기를 분석해야 위해성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시간으로 측정한 자료만 가지고는 정확하게 위해성을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유해대기물질 측정의 사각지대를 줄이려면 보건환경연구원의 더 촘촘한 측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임병선 기자 bs@disappearth.org 메일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