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폐수에서 '환경호르몬' 다량 검출, 배출기준조차 없어
부산·광주·경기남부 등 전국 산업폐수에서 환경호르몬 '알킬페놀류'가 광범위하게 검출됐다. 부산 조사에서는 전체 시료 중 28%가 강 생태계에 '높은 위해성'을 유발하는 수준이었지만, 국내에는 배출허용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부산, 광주, 경기남부 산업폐수서 환경호르몬 광범위 검출
부산시 보건환경연구원은 2022년 7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부산지역 146개 산업시설의 폐수 방류수를 분석했다. 그 결과 노닐페놀은 모든 시설 중 18%에서, 옥틸페놀은 54%에서 검출됐다.
광주광역시 보건환경연구원이 2022년 3~11월 119개 시설을 조사한 결과에서는 전체 중 53.8%의 시설에서 노닐페놀이, 32.8% 시설에서 옥틸페놀이 검출됐다.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의 경기남부 2022년 6~10월 211개 시설 조사에서도 노닐페놀 39.3%, 옥틸페놀 43.1%가 검출됐다. 이에 전국적인 오염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노닐페놀, 옥틸페놀 두 물질 모두 내분비계 교란물질로 분류되며 에스트로겐 수용체와 결합해 남성 불임, 여성 성조숙증, 기형아 출산 등 내분비계 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부산과 경기남부 조사에서는 옥틸페놀 농도가 노닐페놀보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았다. 경기남부 조사에서 세차, 이화학실험, 도금 업종에서 두 물질이 모두 검출됐는데, 옥틸페놀이 노닐페놀의 4.3~8.2배 수준으로 나타났다.
부산 연구진은 2006년부터 시행된 노닐페놀 사용 규제의 '풍선효과'로 분석했다. 정부는 과거 노닐페놀 제조와 사용을 전면 금지했고, 산업용은 엄격하게 제한했다. 그러자 규제를 피해 구조와 독성이 유사한 옥틸페놀로 대체한 것이다.
부산 연구진은 해당 연구결과를 2025년 12월 발간된 '환격분석과 독성보건'에 게재했다. 광주 연구진의 논문은 2023년 2월 학술지 '한국환경기술학회지'에, 경기 연구진의 논문은 2023년 6월 학술지 '환경분석과 독성보건'에 게재됐다.
세차장·금속가공·도금 업종서 고농도
세 지역 조사에서 공통적으로 높은 농도를 보인 업종은 세차시설, 철강·금속가공, 도금 업종이었다.
부산에서는 철강·금속가공 업종에서 옥틸페놀이 최대 206μg/L, 세차시설에서는 노닐페놀이 최대 54μg/L까지 검출됐다. 광주에서는 세차업종 노닐페놀이 최대 114.9μg/L, 철강·금속가공으로 인한 옥틸페놀이 최대 170.1μg/L로 나타났다. 경기 남부에서도 세차 업종 옥틸페놀 최대 235μg/L, 도금 199μg/L, 석유화학 408μg/L 등 고농도 검출이 확인됐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보면 금속 표면 세정제와 세차용 계면활성제에 이들 물질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광주 연구진은 세차시설의 비이온성계면활성제(물에 녹았을 때 이온으로 분리되거나 분해되지 않는 계면활성제)가 폐수처리시설에서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방류되는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수생태계 위해성 '높음' 판정
부산 조사는 다른 조사와 달리 유럽 기준을 바탕으로 수생태계 위해성을 평가했다. 수생태계란 물 속의 생태계를 의미한다. 평가 결과 노닐페놀과 옥틸페놀로 인해 수생태계를 위협하는 수치가 여러 시설에서 나타났다.
부산시 보건환경연구원이 유럽연합 기준을 적용해 환경유해지수를 산출한 결과, 146개 시료 중 41건이 옥틸페놀로 인해 '높은 위해성' 단계로 나타났다. 노닐페놀로 인해 높은 위해성을 보인 사례는 6건이었다.
두 물질이 하천에 방류되면 물고기의 생식 능력 저하, 성비 교란, 개체군 감소를 유발할 수 있다. 낮은 농도에서도 물고기, 무척추동물 등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환경품질기준 문서에 따르면, 노닐페놀은 10~20μg/L 농도부터 에스트로겐과 비슷한 효과가 나타난다. 민물고기 큰머리송사리(fathead minnow)는 7.4μg/L를 초과할 경우 생존율이 낮아질 우려가 나타났다. 무척추동물 중 가장 민감한 종인 물벼룩류는 20.7μg/L에서 절반이 영향을 받았다.
옥틸페놀은 더 낮은 농도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수컷 무지개송어는 1.6μg/L에 노출될 때부터 암컷에게서만 생성되는 난황단백질이 만들어졌고, 제브라피시는 12μg/L를 넘어서면 산란 능력과 수정률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달팽이는 1μg/L만으로도 생식기관 이상이 나타났다.

해외는 엄격 관리, 국내는 기준조차 없어
문제는 국내에 배출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유럽연합은 물 환경 보호 기준으로 노닐페놀 0.3μg/L, 옥틸페놀 0.1μg/L 이하를 제시하고 있다. 미국은 수생태계 보호를 위해 노닐페놀에 연속적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기준 6.6μg/L를 적용하고, 일본은 수생생물 서식 적합성 기준으로 1.0μg/L를 제시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립환경과학원이 2020년에 배출허용기준을 마련했지만 법제화되지 못했다. 환경부는 2021년부터 '감시항목'으로만 관리하고 있다. 노닐페놀과 옥틸페놀은 2022년 우선순위물질 평가에서 3A순위에서 1순위로 상향됐지만 여전히 구속력 있는 기준은 없다.
부산 연구진은 "옥틸페놀 역시 국제적인 규제를 통해 사용이 제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지속적 모니터링을 통한 선제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경기 연구진도 "수질 및 수생태계 보호를 위한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임병선 기자 bs@disappearth.org 메일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