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매직'에 걸었던 기대, 기후변화로 모호해진 절기
2024년 여름, 주변에 기후변화를 온몸으로 느꼈다는 이가 많았다. 8월 마지막 주, 많은 사람이 두 손 모아 22일을 기다렸다. 그날은 24절기 중 하나인 ‘처서(處暑)’인데, ‘처서매직’ 이라는 표현이 유행이었다. 처서는 ‘더위가 그친다’는 뜻이고, 기후 데이터에도 처서부터는 기온이 떨어질거라 보였다.
기대와 달리 올해 8월 말까지 ‘처서매직’은 없었다. 오히려 추석이 되어서도 전국적으로 무더위가 계속됐다. 기상청은 평년보다 더운 날씨를 보여주던 올 9월의 현상이 10월 초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조상들이 농사를 위해 썼던 24절기는 기후위기 시대에 변했다. 2021년 4월, 기상청 국립기상과학원은 ‘우리나라 109년 기후변화 분석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4절기 중 과거 기온과 비슷한 온도가 나타난 절기는 단 하나도 없었다. 전반적으로 기온이 올라가면서 본격 농사를 시작하는 날을 뜻하는 ‘소만은’ 과거에 비해 19일 빨라졌다. 사과 농사를 짓는 필자의 큰아버지는 사과꽃이 2~3주 일찍 핀다고 전했다.
이 보고서에서 기상청은 기후변화로 인한 24절기의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절기에 해당하는 날짜의 과거와 최근 평균기온을 대조했다. 과거는 1912년부터 1940년까지 30년간 평균기온을, 최근 기온은 1991년부터 2020년까지 30년 평균기온을 활용했다.
올해 절기는 어땠을까? ‘처서매직’만 없던 게 아니었다. 대부분의 절기에서 높은 기온을 보였다. 기상청 자료를 바탕으로 올해 절기와 기온을 분석한 결과다.
2024년 24절기 중 1도 이하의 적은 차이를 보인 날은 없었다. 3월 21일이던 춘분이 가장 적은 차이를 나타냈는데, 과거 평균보다 1°C 낮았다. 가장 차이가 많이 난 절기는 봄비가 내린다는 2월 19일 우수인데, 과거 평균기온에 비해 10.2°C 높았다. 이는 최근 추세와 비교해도 유독 높은 수치로, 올봄에 나타난 이상현상으로 꼽힌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처서는 과거 평균기온 24.4°C에 비해, 2024년에는 평균온도가 29.2°C로 높았다. 예년에는 입추가 지나면 기온이 서서히 떨어졌으나, 올해는 기온이 떨어지는 정도가 미미했다. 이번 처서는 직전 절기인 입추에 비해서 0.6°C만 낮다.‘가을의 문턱’을 의미하는 입추 이후에도 더운 날씨가 꺾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올해 입추는 과거 평균기온에 비해 4°C 높고, 최근 추세에 비해서도 3.1°C 높은 '더운 입추'였다. 처서는 과거 평균온도에 비해 4.8°C나 높고, 최근 추세에 비해서도 3.8°C 높다.
9월 7일 백로는 일교차가 커지면서 '맑은 이슬이 내린다'는 뜻인데, 2024년 백로는 예년보다 일교차가 낮았다. 1994년부터 2024년까지 백로 절기에 해당하는 날의 일교차는 평균 7.6°C인데, 2024년은 일교차가 6.7°C에 그쳤다.
가장 최근 지나간 절기는 10월 8일 한로, ‘찬 이슬이 내린다'는 뜻이다. 과거 평균기온은 15.9°C였으나 올해 한로는 평균 17.9°C를 기록했다. 곧 찾아올 10월 23일은 서리가 내린다는 뜻의 상강이다. 지구는 한반도에 어떤 날씨를 보여줄까. 더 길게 보면 기온 데이터는 인류세의 징후인 '인간이 살기 어려운 날씨'를 예고함이 분명하다.
임병선 기자 bs@disappearth.org 메일 보내기